宋次道
는 家多書
注+① 東都事略曰 “宋敏求, 字次道, 隨州平棘人. 父綬, 參知政事, 家藏書二萬卷. 敏求, 官龍圖閣學士, 以力學被遇. 父子繼世掌史.”하니 劉道原
이 就借觀
이라 宋
이 日具酒饌
하여 爲主人禮
하니 道原曰
閉閤抄讀
하여 旬日
에 盡其書而去
注+② 宋史曰 “劉恕, 字道原, 筠州人. 父奐, 潁上令. 恕少穎悟, 書過目成誦, 重意義, 急然諾. 王安石欲引置三司條例, 以不習金穀辭.”라
9-38 【
보補】
송차도宋次道(
송민구宋敏求)는 집에 서적이 많았으니
注+① 왕칭王稱의 ≪동도사략東都事略≫에 말하였다. “송민구宋敏求는 자字가 차도次道로, 수주隨州 평극平棘 사람이다. 부친 송수宋綬는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고, 집에 2만 권의 책을 소장하였다. 송민구는 용도각학사龍圖閣學士를 역임하였고, 학문에 매진한다고 하여 〈임금의〉 인정을 받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역사서 편찬을 담당하였다.” 유도원劉道原(
유서劉恕)이 가서 빌려 보았다. 송차도가 매일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주인의 예를 갖추자, 유도원이 말하였다.
“이것은 내가 찾아온 이유가 아니니, 모두 거두어 가십시오.”
〈그런 뒤에 유도원은〉 문을 닫은 채 베끼고 읽어 10일 만에 책을 모두 보고는 떠났다.
注+② ≪송사宋史≫ 〈유서열전劉恕列傳〉에 말하였다. “유서는 자字가 도원道原으로, 균주筠州 사람이다. 부친 유환劉奐은 영상현령潁上縣令을 역임하였다. 유서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책의 내용이 눈에 스쳐 가기만 해도 암송하고, 의의意義(명예)를 중시하며, 왕안석王安石이 불러 들여 에 두려고 하였으나, 〈세금으로 내는〉 돈과 곡물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