殷仲堪이 既爲荊州에 值水儉한대 食常五盌하고 盤外無餘肴라 飯粒脫落盤席間이면 輒拾以噉之하니 雖欲率物이나 亦緣其性眞素라 每語子弟云
勿以我受任方州
라하여 云我豁平昔時意
하라 今吾處之不易
이라 貧者
는 士之常
이니 焉得登枝而捐其本
가 爾曹其存之
注+① 晉安帝紀曰 “仲堪, 陳郡人, 太常融孫也. 車騎將軍謝玄, 請爲長史, 孝武說之, 俄爲黃門侍郎. 自殺袁悅之後, 上深爲晏駕後計, 故先出王恭爲北藩, 荊州刺史王忱死, 乃中詔用仲堪代焉.”하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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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감殷仲堪이 형주를 맡고 나서 홍수를 만났는데
밥알이 소반과 자리 사이에 떨어지면 그때마다 그것을 주워서 먹었으니 비록 남에게 솔선수범하려고 한 것이긴 하나 또한 그의 성품이 본래 소탈해서였다. 매번
자제子弟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한
주州를 다스리는 자리에 임명되었다 하여 예전 때의 뜻을 버렸다고 말하지 말라. 지금 나는 처지가 바뀌지 않았다. 가난은 선비의 일상이니 어찌 가지에 올랐다고 하여 그 뿌리를 버리겠는가. 너희는 그것을 보존하라.”
注+① ≪진안제기晉安帝紀≫에 말하였다. “은중감殷仲堪은 진군陳郡 사람이고, 태상太常인 은융殷融의 손자이다. 거기장군車騎將軍 사현謝玄이 초청하여 장사長史로 삼았고, 효무제孝武帝(사마요司馬曜)가 그를 총애하여 얼마 뒤에 황문시랑黃門侍郎으로 삼았다. 원열袁悅을 죽인 후로 황제가 자신이 죽은 뒤의 대책을 깊이 생각하였으므로 먼저 왕공王恭을 북번北蕃으로 내보냈고, 형주자사荊州刺史 왕침王忱이 죽자 로 은중감을 그 자리에 대신 임명하였다.”
注
◦ 유진옹劉辰翁:주발 5개 분량은 적은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