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왕승상王丞相(
왕도王導)이
여기女伎(여자의
악무樂舞)를 거행하고 〈손님들을 위해〉 걸상과 자리를 준비하였다.
채공蔡公(
채모蔡謨)이 먼저 자리에 있었는데, 불쾌해하면서 떠나니 왕승상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注+① 〈채사도별전蔡司徒別傳〉에 말하였다. “채모蔡謨는 자字가 도명道明으로, 제양濟陽 고성考城 사람이며, 박학다식하였다. 강좌江左(강동江東)로 피난 온 이후에 좌광록左光祿․녹상서사錄尙書事․양주자사楊州刺史를 역임하였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사공司空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