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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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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蜀公 素不飮酒하고 又詆佛敎注+① 宋史曰 “范鎭, 字景仁, 成都華陽人. 薛奎守蜀, 還朝曰 ‘得一偉人, 當以文學名世.’ 其學本六經, 不道佛․老․申․韓之說. 歷官端明殿學士․提擧太乙宮兼侍讀.” 在許下 與韓持國注+② 五朝名臣言行錄曰 “韓維, 字持國, 忠獻公億之子. 以蔭補官, 仕至門下侍郞.”兄弟注+③ 宋史論曰 “億有子, 位公府, 而行各有適. 絳適於同, 維適於正, 縝適於嚴.” 往還한대 諸韓皆崇此二事注+④ 李師友談記曰 “東坡云 ‘日者王寧․王寔見訪, 寔, 持國少傅之壻也. 因問持國安否, 皆曰 「持國嘗語人, 󰡔吾已癃老, 且將聲樂酒色, 以娛年.󰡕」 東坡曰 「頃有一老人, 未嘗參禪, 而雅合禪理. 一日會親友曰 󰡔老人且去.󰡕 因攝衣正坐, 將奄奄焉. 諸子呼號, 願留一言爲敎. 老人曰 󰡔惟五更起, 句當自家事.󰡕 諸子曰 󰡔家中幸豐, 何用早起? 家事, 皆自家事, 豈有分別?󰡕 老人曰 󰡔不然. 所謂自家事, 是死時將得去者. 吾平生治生, 今日就化, 可將何者去?󰡕 諸子頗悟. 持國果自以殘年勞心聲酒, 不若爲死時將去者計也.」’”하니 公頗病之 貽蘇子瞻書問하되
救之인댄 當以何術잇고하니
子瞻報曰
請公試觀能惑之性 何自而生이며 欲救之心 作何形相잇가 此猶不立이면 彼復何依잇가 正恐黃面瞿曇 亦須歛袵注+⑤ 釋迦譜曰 “淨飯遠祖, 捨國修行, 受瞿曇姓, 故曰瞿曇氏.”이리니 况學之者耶注+⑥ 張太史明道雜志曰 “范蜀公不信佛說, 大蘇公嘗與公論, 求其所以不信之說. 范公云 ‘鎭平生事, 非目所見者, 未嘗信.’ 蘇公曰 ‘公亦安能然哉? 設公有疾, 令醫切脉, 醫曰寒則服熱藥, 曰熱則餌寒藥, 公何嘗見脈而信之? 何獨至於佛而必待見耶?’”아하다


9-36 【범촉공范蜀公(범진范鎭)은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았고 또한 불교를 비방하였다.注+① ≪송사宋史≫ 〈범진열전范鎭列傳〉에 말하였다. “범진은 경인景仁으로, 성도成都 화양華陽 사람이다. 설규薛奎가 〈지방관으로서〉 촉군蜀郡을 다스리다가 중앙 조정으로 돌아와 ‘위대한 사람 한 명(범진)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틀림없이 문학文學으로 세상에 명성을 떨칠 것이다.’ 하였다. 그의 학문은 육경六經에 근본을 두고, 불타佛陀노자老子신불해申不害한비자韓非子의 논설을 언급하지 않았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제거태을궁提擧太乙宮시독侍讀이 되었다.” 허하許下(허창許昌)에 있을 때 한지국韓持國(한유韓維)注+② ≪오조명신언행록五朝名臣言行錄≫에 말하였다. “한유韓維지국持國으로, 충헌공忠獻公 한억韓億의 아들이다. 출사出仕하여 관직이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이르렀다.” 형제와注+③ ≪송사宋史≫ 〈한억열전韓億列傳〉에 말하였다. “한억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공부公府(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었고, 행실에 각자 적합함이 있었다. 한강韓絳은 어울림에 적합하고, 한유는 올바름에 적합하며, 한진韓縝은 엄격함에 적합하였다.” 왕래했는데, 한지국 형제가 모두 〈음주飮酒숭불崇佛〉 이 두 가지 일을 추숭하니注+이치李廌의 ≪사우담기師友談記≫에 말하였다. “소동파蘇東坡(소식蘇軾)가 말하였다. ‘일전에 왕녕王寧왕식王寔의 방문을 받았는데, 왕식은 소부少傅 한지국(한유)의 사위이다. 한지국의 안부를 물었더니, 두 사람 모두 「한지국께서 한번은 사람들에게 󰡔나는 이미 병들고 늙었으니 장차 음악과 주색酒色으로 여생을 즐길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내(소동파)가 말하였다. 「근래에 어떤 노인 한 분이 있었는데, 〈그는〉 한 번도 참선한 적이 없었으나 평소 선리禪理에 부합했소. 하루는 〈그가〉 벗들을 모아 놓고 󰡔이 늙은이는 장차 떠나려 하네.󰡕 하고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으니 장차 숨이 끊어지려고 하였소. 자식들이 울부짖으면서 가르침으로 삼을 만한 한 마디 말씀을 남겨주기를 원하자, 노인은 󰡔오경五更(새벽 3~5시)에 일어나 자신의 일을 처리하라.󰡕 하였소. 자식들이 󰡔집안이 다행히 풍족하니 무엇 때문에 일찍 일어나겠습니까. 집안일은 모두 〈각자〉 본인의 일이니 어찌 구분이 있겠습니까.󰡕 하니, 노인이 󰡔그렇지 않다. 이른바 자신의 일이라는 것은 죽을 때 가지고 떠날 것을 가리킨다. 나는 평생 동안 생계를 꾸려왔는데, 오늘 취화就化(승려의 사망)하려고 하니 무엇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좋겠느냐?󰡕 하자, 자식들이 〈그 의미를〉 잘 깨달았소. 한지국께서 스스로 과연 노년에 음악과 주색으로 마음을 수고롭게 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죽을 때 가지고 떠날 것을 생각하는 것만 못하오.」’” 범촉공이 매우 병통으로 여겼다. 범촉공이 소자첨蘇子瞻(소식蘇軾)에게 편지를 보내 물었다.
“그들을 구원하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까?”
소자첨이 다음과 같이 답장하였다.
“청컨대, 공께서는 〈그들이 술과 불교에〉 미혹될 수 있는 마음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공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십시오. 〈공의〉 이런 마음이 확립되지 않았다면 저들의 〈미혹이〉 도대체 어디에 의거하겠습니까. 〈이런 내용은〉 바로 황금빛 얼굴의 조차도 틀림없이 옷깃을 여미며 〈공손히 수용할〉 것이니,注+⑤ ≪석가보釋迦譜≫에 말하였다. “의 먼 조상이 나라를 포기하고 수행하여 구담瞿曇이라는 을 받았기 때문에 구담씨瞿曇氏라고 한 것이다.” 하물며 구담을 배우는 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注+장태사張太史(장뢰張耒)의 ≪명도잡지明道雜志≫에 말하였다. “범촉공范蜀公(범진范鎭)은 불교의 논설을 믿지 않았다. 이 한번은 범공과 담론하다가 불교의 논설을 믿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범공이 ‘저는 평소 어떤 일이든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였다. 대소공이 ‘공은 또한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만약 공에게 질병이 있다면 의사로 하여금 진맥하게 한 뒤 의사가 한증寒症이라고 하면 열약熱藥을 복용할 것이고 열증熱症이라고 하면 한약寒藥을 먹을 것입니다. 공은 어떻게 항상 진맥만 받고도 믿으십니까? 어찌 유독 불교에 대해서만 기필코 〈직접〉 보려고 하십니까.’”
소식蘇軾소식蘇軾


역주
역주1 蔭補 : 선대의 공훈으로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관직에 보임되는 것이다.
역주2 瞿曇(구담) : 梵語 Gāutama의 音譯으로, 석가모니 선대의 俗姓인데, 喬答摩라고도 한다. 후대에는 부처나 승려를 이렇게 호칭하였다.
역주3 淨飯王 : 梵語 śuddhodana의 意譯으로, 석가모니의 부친인 中印度 迦毗羅國의 임금이다.
역주4 大蘇公 : 蘇軾의 별칭이다. 蘇洵은 그의 아들 蘇軾․蘇轍과 더불어 문장에 뛰어나 唐宋八大家에 들었는데, 소순을 老蘇, 소식을 大蘇, 소철을 小蘇라 하였고, 셋을 합하여 三蘇, 소식 형제를 二蘇라 하였다.
역주5 (薦)[廌] : 저본에는 ‘薦’으로 되어 있으나, ≪世說箋本≫에 의거하여 ‘廌’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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