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恐今之視古
에 亦猶後之視今也
注+① 漢書曰 “京房, 字君明, 東郡頓丘人. 尤好鍾律, 知音聲, 以孝廉爲郞. 是時中書令石顯專權, 及友人五鹿充宗爲尙書令. 與房同經, 論議相是非, 而此二人用事. 房嘗宴見, 問上曰 ‘幽厲之君何以亡? 所任何人?’ 上曰 ‘君亦不明, 而臣巧佞.’ 房曰 ‘知其巧佞而任之耶? 將以爲賢耶?’ 上曰 ‘賢之.’ 房曰 ‘然則今何以知其不賢.’ 上曰 ‘以其時亂而君危知之.’ 房曰 ‘是任賢而理, 任不肖而亂, 自然之道也. 幽․厲何不覺悟而蚤納賢? 何爲卒任不肖以至亡?’ 於是上曰 ‘亂亡之君, 各賢其臣. 令皆覺悟, 安得亂亡之君.’ 房曰 ‘齊桓․二世何不以幽․厲疑之, 而任豎刁․趙高, 政治日亂耶?’ 上曰 ‘唯有道者能以往知來耳.’ 房曰 ‘自陛下即位, 盜賊不禁, 刑人滿市云云.’ 問上曰 ‘今治也? 亂也?’ 上曰 ‘然愈於彼.’ 房曰 ‘前二君皆然. 臣恐後之視今, 猶今之視前也.’ 上曰 ‘今爲亂者誰?’ 房曰 ‘上所親與圖事帷幄中者.’ 房指謂石顯及充宗, 顯等乃建言, 宜試房以郡守, 遂以房爲東郡. 顯發其私事, 坐棄市.”라하다
19-2 경방京房이 한漢 원제元帝(유석劉奭)와 함께 담론하다가 원제에게 물었다.
“
은 어떻게 해서 망했으며 임용했던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불충한 줄 알면서도 임용했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망국亡國의 군주는 각각 신하들을 현명하다고 여겼다. 어찌 불충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임용했겠는가.”
“지금 옛날을 보는 것처럼 훗날도 지금을 마찬가지로 볼까
注+① ≪한서漢書≫에 말했다. “경방京房은 자字가 군명君明으로 동군東郡 돈구頓丘 사람이다. 음률을 특히나 좋아해 음악에 대해 잘 알았으며 효렴孝廉으로 낭관郎官이 되었다. 이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고 벗인 이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그들은〉 경방과 같이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로 논의論議하며 서로 시비를 다투었는데 이 두 사람이 국사를 좌지우지하였다. 경방이 한번은 에서 황제에게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은 어떻게해서 망했으며 임용했던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라고 묻자, 황제가 ‘임금도 현명하지 못했지만 신하가 간교하고 아첨하였다.’라고 하였다. 경방이 ‘간교하고 아첨한다는 것을 알고도 임용했습니까? 아니면 현명하다고 여겼습니까?’라고 하니, 황제가 ‘현명하다고 생각했다.’라고 하였다. 경방이 ‘그렇다면 지금은 어찌하여 그들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아십니까?’하니, 황제가 ‘시대가 혼란했고 임금이 위태로웠다는 것으로 〈그들이 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라고 하였다. 경방이 ‘현명한 자를 임용하면 다스려지고 못난 자를 임용하면 어지러워지는 것은 자연의 도리입니다. 유왕과 여왕은 어찌하여 알아차리고서 일찍 현명한 자를 들이지 않았으며 무엇 때문에 못난 자를 끝끝내 임용하여 망하게 된 것입니까?’라고 하니, 이에 황제가 ‘혼란과 망국을 초래한 임금은 각각 신하들을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가령 모두가 알아차렸다면 혼란과 망국을 초래한 임금이 어찌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경방이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진秦나라 이세二世는 어찌하여 유왕과 여왕의 일을 가지고 의심해 보지 않고 수조豎刁와 조고趙高를 임용하여 정치가 날로 혼란해 졌습니까?’라고 하자, 황제가 ‘오직 도道를 체득한 사람만 지난 일을 가지고 올 일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경방이 ‘폐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도적은 억제되지 않고 형벌을 받은 사람들이 저자에 가득합니다.……’라고 하며 황제에게 ‘지금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까, 혼란합니까?’라고 물으니, 황제가 ‘그렇지만 저들보다는 낫다.’라고 하였다. 경방이 ‘앞의 두 임금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신은 훗날 지금을 보는 것이 지금 옛날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지금 혼란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하니, 경방이 ‘성상께서 유악帷幄 안에서 친히 함께 일을 도모하는 자들입니다.’라고 하였다. 경방이 석현石顯과 충종充宗을 지적해서 말하자, 석현 등이 경방에게 군수郡守를 맡겨 시험해 보아야 한다고 건의하였고 마침내 경방을 동군 태수로 삼았다. 〈그 뒤〉 석현이 〈경방의〉 사적인 일을 들추어내어 기시棄市에 처해지도록 하였다.”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