服虔
이 旣善春秋
하고 將爲注
에 欲參考同異
러니 聞崔烈
이 集門生講傳
注+① 摯虞文章志曰 “烈, 字威考, 高陽安平人, 駰之孫․瑗之兄子也. 靈帝時, 官至司徒․太尉, 封陽平亭侯.”하고 遂匿姓名
하여 爲烈門人賃作食
이라
每當至講時하여는 輒竊聽戶壁間이러니 旣知不能踰己하고 稍共諸生으로 敍其短長하니 烈聞에 不測何人이나 然素聞虔名하니 意疑之라
明蚤往하니 及未寤할새 便呼子愼子愼하니 虔이 不覺驚應하고 遂相與友善이라
7-5
복건服虔이 ≪
춘추春秋≫에 해박해진 뒤에 주해하려고 할 때에 〈다른 사람의 견해와〉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참고하고자 했는데, 〈마침〉
최열崔烈이 문하생을 모집하여 〈≪춘추≫를〉 강의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注+① 의 에 말하였다. “최열崔烈은 자字가 위고威考로, 고양高陽의 안평安平 사람이고, 최인崔駰의 손자이자 최원崔瑗의 형의 아들이다.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에 관직이 사도司徒와 태위太尉에 이르고 양평정후陽平亭侯에 봉해졌다.” 마침내 자신의 성명을 숨기고 최열의 문하생에게 밥을 해주는 품팔이꾼으로 고용되었다.
매번 최열이 강론할 때가 되면 그때마다 지게문과 벽 사이에서 몰래 엿들었는데, 〈최열의 강론 수준이〉 자신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 뒤에 잠시 여러 문하생들에게 강론의 장점과 단점을 진술하였다. 최열이 〈복건의 평가를〉 듣고는 그가 누구인지 추측하지 못했으나, 평소에 복건의 이름을 들었던 터라 마음속으로 〈복건이 아닌지〉 의심하였다.
다음날 아침 〈최열이 복건의 거처에〉 갔는데 〈복건이〉 아직 깨기 전이었다. 최열이 ‘자신子愼, 자신子愼’ 하면서 〈복건의 자字를〉 부르자, 복건이 부지불식간에 놀라면서 대답하여 〈신분이 드러나게 되었고〉 마침내 이들은 서로 친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