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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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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江初 拜官할새 輿飾供饌이라 羊曼 拜丹陽尹한대 客來蚤者 竝得佳設이나 日晏漸罄하여 不復及精하니 隨客早晩하고 不問貴賤注+① 曼別傳曰 “曼, 字延祖, 泰山南城人. 父曁, 陽平太守. 曼頹縱宏任, 飮酒誕節, 與陳留阮放等號兗州八達. 累遷丹陽尹, 爲蘇峻所害.”이라
羊固 拜臨海한대 竟日皆美供하여 雖晩至라도 亦獲盛饌이라 時論以固之豊華 不如曼之眞率注+② 明帝東宮僚屬名曰 “羊固, 字道安, 泰山人.” 文字志曰 “固父坦, 車騎長史. 固善草行, 著名一時. 避亂渡江, 累遷黃門侍郞. 褒其淸儉, 贈大鴻臚.”이라


12-24 〈나라 조정이〉 장강을 건너 온 초반에 관직을 제수했을 때, 〈제수 받은 사람들은〉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였다. 양만羊曼단양윤丹陽尹에 제수되었는데, 손님 가운데 일찍 온 사람은 모두 훌륭한 상차림을 받았으나, 날이 저물어가면서 차츰 〈음식이〉 떨어져 더 이상 좋은 음식을 대접하지 못했으니 손님이 도착한 순서를 따르고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注+① 〈양만별전羊曼別傳〉에 말하였다. “양만은 연조延祖로, 태산泰山 남성南城 사람이다. 부친 양기羊曁양평태수陽平太守를 역임하였다. 양만은 방종하고 제멋대로이며, 술을 마시고 예절을 무시하여 진류군陳留郡 등과 함께 로 불렸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단양윤丹陽尹이 되었고, 소준蘇峻에게 살해당했다.”
양고羊固임해태수臨海太守에 제수되었는데, 온종일 모두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여 비록 늦게 도착했더라도 역시 훌륭한 음식을 대접받았다. 당시의 여론은 양고의 풍성한 음식이 양만의 진솔함만 못하다고 하였다.注+② ≪명제동궁료속명明帝東宮僚屬名≫에 말하였다. “양고羊固도안道安으로, 태산泰山 사람이다.”
왕음王愔에 말하였다. “양고의 부친 양탄羊坦거기장군車騎將軍장사長史를 역임하였다. 양고는 초서와 행서에 뛰어나서 한 시대에 이름을 날렸다. 난리를 피해 장강을 건넌 뒤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었다. 〈사후에〉 그의 청렴과 검소를 표창하여 대홍려大鴻臚에 추증하였다.”


역주
역주1 서로 : 원문의 ‘輿’에 대해 ≪世說新語補觿≫에서는 ‘多(많다)’의 뜻, ≪世說講義≫에서는 ‘輿薪(땔나무를 실은 수레)’의 ‘輿’로 ‘거대하여 보기 쉽다’는 뜻이라고 하였고, ≪世說新語補考≫와 ≪世說箋本≫에서는 ‘與’의 誤字라고 하였다. ≪晉書≫ 〈羊曼列傳〉에 ‘相’으로 되어 있으니, 후자의 견해가 옳은 듯하다.
역주2 阮放 : 江左八達의 한 명으로, 字는 思度이고 陈留 尉氏 사람이다. 晉나라 太學博士와 太子中舍人을 역임하였다. 明帝 때에 吏部郞이 되어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을 주관했는데, 훌륭한 업적을 세웠고, 평소에 청렴하여 이부랑이 되었는데도 飢寒을 면치 못하였다.
역주3 兗州八達 : 東晉시대에 예법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날마다 淸談을 나누며 술을 몹시 즐겼던 光逸․曼桓․謝鯤․羊彜․阮放․阮孚․畢卓․胡毋輔之을 이른다.(≪晉書≫ 〈光逸傳〉)
역주4 古今文字志目 : 書法書로, 상권에 古書 36종, 중권에 秦ㆍ漢ㆍ吳의 59명, 하권에 魏ㆍ晉의 58명에 대해 기록했는데, 원문은 일실되었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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