阮光祿
이 赴山陵
하여 至都
한대 不往殷․劉許
하고 過事便還
이라 諸人
이 相與追之
어늘 亦知時流必當逐己
하고 乃遄疾而去
하니 至方山
에 不相及
注+① 中興書曰 “裕終日頹然, 無所綜, 而物自宗之.”이라
我入이면 當泊安石渚下耳요 不敢復近思曠傍이라 伊便能捉杖打人이나 不易로다하다
11-25
원광록阮光祿(
원유阮裕)이
산릉山陵에 참석하려고 도성(
건강建康)에 도착했는데,
와
유담劉惔이 있는 곳을 찾아가지 않은 채 일을 마친 뒤에 즉시 돌아갔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그를〉 뒤쫓아 갔지만, 〈완광록은〉 이미 역시
시류時流(세속의 무리)들이 틀림없이 자신을 뒤쫓아 올 것을 알고는 서둘러 갔기 때문에 〈뒤쫓던 자들이〉
에 이르도록 따라 잡지 못하였다.
注+①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원유阮裕는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쓰러져 있은 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바가 없었으나, 사람들이 저절로 그를 종주로 삼았다.”
당시 회계태수會稽太守 유윤劉尹(유담)이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회계 경내로〉 들어간다면 마땅히
사안석謝安石(
사안謝安)이 있는 강가에 배를 댈 뿐이고, 감히 더 이상
원사광阮思曠(완유)의 곁에는 가까이 갈 수 없겠지. 〈가까이 가면〉 그가 즉시 막대기를 들고 나를 때릴 수 있겠지만, 〈때리는 것이〉
이다.”
注
◦ 유진옹劉辰翁:〈원유阮裕의 행동은〉 전혀 윤리가 없다.
注
◦ 유신옹劉辰翁:〈본문의〉 안석저安石渚는 회계군會稽郡의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