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太常은 淸潔守禮러니 嘗臥病齋宮할새 妻가 闚問所苦하니 周가 以爲干犯齋禁하여 大怒하고 收送詔獄이라 時人이 爲之語曰
生世不諧
하니 作太常妻
라 一歲三百六十日
에 三百五十九日齋
하고 一日不齋醉如泥
注+① 東觀漢記曰 “周澤, 字穉都. 少修高節, 耿介特立. 好學問, 治嚴氏春秋, 門徒數百人. 隱居上野, 不汲汲於時俗. 拜太常, 果敢數有直言, 朝廷嘉其淸廉.”라하다
10-6 【
보補】
주태상周太常(
주택周澤)은 청렴결백하고 예법을 준수하였다. 한번은 병이 들어
재궁齋宮에 누워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엿보면서 아픈 곳을 물었더니, 주태상은 〈부인이〉 재궁의 금기를 범했다고 여겨 크게 화내고는 〈아내를〉 붙잡아
에 보내버렸다. 당시 사람들이 이에 대해 말하였다.
“세상에 살면서 〈모든 일이〉 조화롭지 못하니, 주태상의 아내가 되었네. 〈주태상은〉 1년 360일 가운데 359일은 재계하고, 재계하지 않는 하루는 곤죽이 되도록 술에 취하네.”
注+① 〈주택전周澤傳〉에 말하였다. “주택은 자字가 치도穉都이다. 젊을 때부터 고상한 절조를 닦아 강직함이 남달리 뛰어났다. 학문을 좋아하여 를 연구했는데, 제자가 수백 명이었다. 상야上野에 은거하면서 세상사에 급급해하지 않았다. 태상太常에 제수된 뒤에는 과감하게 자주 직언을 하였고, 조정에서는 그의 청렴결백을 가상히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