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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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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桓玄簒立하니 徐野民 獨哀感으로 涕泗交流注+① 晉書曰 “徐廣, 字野民, 東莞姑人. 世好學, 至廣, 尤爲精純. 謝玄爲兗州, 辟從事, 桓玄輔政, 以爲大將軍祭酒.” 謝宣明 止之하니 收淚하고 言曰
爲宋朝佐命이요 是晉室遺老 憂喜之事 固自不同이라하고
乃更欷歔注+② 宋書曰 “謝晦, 字宣明, 陳郡陽夏人. 祖朗, 東陽太守, 父重, 司馬道子長史. 晦爲孟昶中兵參軍, 後爲宋高祖中領軍. 少帝卽位, 加中書令, 與徐羨之․傳亮共輔政, 以事伏誅.”하다
【頭註】
王云 “徐廣答謝晦, 劉裕受禪之時也. 此言桓玄簒立, 誤.”


11-32 【 서야민徐野民(서광徐廣)이 홀로 슬픈 감정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다.注+① ≪진서晉書≫ 〈서광열전徐廣列傳〉에 말하였다. “서광은 야민野民으로, 동완東莞 고장姑藏 사람이다. 〈그 가문은〉 대대로 학문을 좋아했는데, 서광에 이르러 〈학문이〉 더욱 정밀하고 순수해졌다. 사현謝玄연주兗州를 다스릴 때 종사從事로 초빙하였고, 환현桓玄이 국정을 보좌할 때 대장군大將軍좨주祭酒로 삼았다.” 사선명謝宣明(사회謝晦)이 만류하니, 〈서야민이〉 눈물을 거두며 말하였다.
“당신은 나라의 개국공신이고 나는 나라의 구신舊臣이니, 근심과 기쁨에 관한 일이 본래 그 자체로 같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흐느꼈다.注+② ≪송서宋書≫ 〈사회열전謝晦列傳〉에 말하였다. “사회는 선명宣明으로,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이다. 조부 사랑謝朗동양태수東陽太守를, 부친 사중謝重사마도자司馬道子장사長史를 역임하였다. 사회는 맹창孟昶중병참군中兵參軍이 되었고, 이후에 나라 고조高祖(무제武帝 유유劉裕)의 중령군中領軍이 되었다. 소제少帝(유의부劉義符)가 즉위한 뒤에 중서령中書令으로 승진하여 서선지徐羨之전량傳亮과 함께 국정을 보좌하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서광徐廣사회謝晦에게 대답한 시기는 유유劉裕가 〈나라의〉 선양을 받았던 때이니, 여기에서 환현桓玄이 찬탈하여 등극한 때라고 한 것은 오류이다.


역주
역주1 桓玄이……등극하니 : ≪世說補觿≫․≪世說啓微≫․≪世說講義≫에서는 ‘劉裕가 晉나라의 선양을 받았던 때’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환현의 제위 찬탈은 安帝 때의 일이고, 20년 뒤 恭帝 때에 유유가 선양을 받았기 때문에 이 견해가 옳다.
역주2 : ‘幕’이 되어야 한다. ≪宋書≫에 ‘幕’이라 되어 있고, 東莞郡에는 姑臧縣은 없고 姑幕縣이 있기 때문이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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