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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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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禮 一世龍門이라 同縣聶季寶 小家子 不敢見元禮러니 杜周甫 知季寶賢이로대 不能定名하여 以語元禮하니 元禮呼見하여 坐置砌下牛衣上하고 一與言하얀 即決曰
此人 當作國士리라하다
後卒如元禮言注+① 范曄後漢書曰 “杜密, 字周甫, (頴)[潁]川考城人. 少有厲俗志. 爲胡廣所辟, 桓帝徵拜尙書令. 黨事起, 與李膺俱坐, 而名行相次, 時人稱李․杜.”이라


14-2 【는 당대의 이었다. 당시에 같은 현에 사는 섭계보聶季寶는 가난한 집 자식이라 감히 이원례를 만날 수 없었다. 두주보杜周甫(두밀杜密)는 섭계보가 어질다는 것은 알았으나 〈품평하는〉 명칭을 정하지 못해 이원례에게 말하였다. 이원례가 섭계보를 불러 만나서 섬돌 아래 위에 앉혀놓고 한 번 대화해 보고는 즉시 판정하였다.
이응李膺이응李膺
“이 사람은 국사國士가 될 것이다.”
후에 결국 이원례의 말처럼 되었다.注+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두밀전杜密傳〉에 말하였다. “두밀杜密주보周甫이고, 영천潁川 고성考城 사람이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세속世俗을 북돋우려는 뜻을 지녔다. 호광胡廣의 부름을 받았고 환제桓帝가 초빙하여 상서령에 임명하였다. 가 일어났을 때 이응李膺과 함께 연루되었는데 명성과 행위가 서로 버금가서 당시 사람들이 그들도 ‘이두李杜’라 칭하였다.”


역주
역주1 李元禮(李膺) : 110~169. 字는 元禮이고, 颍川郡 襄城县 사람이다. 东汉 때의 名士이자 官员으로, 黨錮의 禍때 宦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後漢書≫ 〈黨錮傳〉)
역주2 龍門 : 용문은 黃河 상류의 河津이란 작은 고을의 별칭이다. 이곳은 급류의 물살이 강해 물고기들이 용문의 아래에 수천 마리나 모였지만 올라갈 수가 없었는데, 그 급류를 올라갈 수만 있다면 용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李膺은 당시에 환관들의 전횡에 대항한 인물로 모든 관리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므로 그에게 인정을 받으면 용문에 올라간 것과 같다고 하였다. ‘登龍門’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後漢書≫ 〈李膺傳〉)
역주3 牛衣 : 추울 때 소의 등을 덮어주는 옷을 말한다.
역주4 黨錮의 禍 : 後漢의 桓帝 때 陳蕃ㆍ李膺 등의 志士들이 宦官들이 정권을 휘두르는데 분개하여 이를 공격하다가 ‘黨人’으로 지목되어 화를 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일로 죽은 자가 100여 인이고 많은 사람이 종신토록 벼슬하지 못하는 終身禁錮刑을 받았다.(≪後漢書≫ 〈黨錮傳〉)
역주5 : 李膺과 杜密 이전에 李固와 杜喬가 나란히 명성이 높아 사람들이 ‘李杜’라 칭하였기 때문에 ‘亦’자를 쓴 것이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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