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須
라 虞世南
이 在此
하니 行秘書
注+① 劉昫唐書曰 “虞世南, 字伯施, 越州餘姚人. 父荔, 陳太子中庶子. 叔父寄無子, 以世南繼後. 性沉靜寡欲, 篤志勤學. 少與兄世基學於顧野王, 經十餘年, 精思不倦, 或累旬不盥櫛. 善屬文, 祖述徐陵, 陵亦言世南得己之意. 又沙門智永善羲之書, 世南師焉, 妙得其體, 由是聲名籍甚. 太宗朝, 官秘書監, 爵永興縣子.”이라하다
16-45 【보補】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한번은 출행出行했을 때에 유사有司가 부서副書[사본]를 싣고 따르겠다고 청하자, 황제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우세남虞世南이 여기에 있으니, 〈그는〉 걸어다니는
이다.”
注+① 유후劉昫의 ≪구당서舊唐書≫에 말했다. “우세남虞世南은 자字가 백시伯施이고 월주越州 여요餘姚 사람이다. 부친 우려虞荔는 진陳나라의 였다. 숙부 우기虞寄에게 아들이 없어 우세남으로 뒤를 잇게 하였다. 천성이 차분하고 욕심이 없었으며 뜻을 독실히 하고 학문에 힘썼다. 어려서 형인 우세기虞世基와 함께 고야왕顧野王 밑에서 공부를 했는데 10여 년이 지나도록 정밀히 생각하기를 나태히 하지 않았으며 간혹 수십 일 동안 세수나 빗질을 하지 않기도 하였다. 글을 잘 지었는데, 서릉徐陵을 본받았고 서릉 또한 우세남이 자신의 종지宗旨를 파악했다고 말하였다. 또 사문沙門 지영智永이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잘 썼는데 우세남은 그를 스승으로 삼아 그 필체를 뛰어나게 터득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명성이 더욱 자자하게 되었다. 태종조太宗朝에 비서감秘書監을 지냈고 작위는 영흥현자永興縣子였다.”당唐 태종太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