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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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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士衡 入洛 擬作三都賦한대 聞左太冲作之注+① 思別傳曰 “思, 字太冲, 齊國臨淄人. 父雍起於筆札, 多所掌練, 爲殿中御史. 思蚤喪母, 雍憐之, 不甚敎其書學, 及長, 博覽名文, 遍閱百家. 司空張華辟爲祭酒, 賈謐擧爲秘書郎. 謐誅, 歸鄕里, 專思著述. 齊王冏請爲記室參軍, 不起. 時爲三都賦, 未成也. 後數年, 疾終, 其三都賦改定, 至終乃上. 初作蜀都賦, 云 ‘金馬電發於高岡, 碧雞振翼而雲披. 鬼彈飛丸以, 火井騰光以赫曦.’ 今無鬼彈, 故其賦往往不同. 思爲人, 無吏幹而有文才. 又頗以椒房自矜, 故齊人不重也.” 臧榮緖晉書曰 “思欲作三都賦, 乃詣著作郞, 訪岷․邛之事. 搆思十稔, 門․庭․藩․溷皆著筆札, 遇得一句, 即疏之.” 士衡 撫掌大笑하고 與弟士龍書曰
此間有一傖父 欲作三都賦注+② 晉陽秋曰 “吳人以中州人爲傖.”하니 須其成하여 以覆酒甕耳라하다
左賦出하니 士衡 絶歎伏하고 以爲不能加하여 遂輟筆焉注+③ 陸雲別傳曰 “雲, 字士龍, 吳大司馬抗之第五子, 機同母弟也. 儒雅有俊才, 容貌瓌偉, 口敏能談, 博聞彊記, 善著述. 六歲能賦詩, 時人以爲項託楊烏之儔. 十八, 刺史周命爲主簿, 累遷太子舍人․淸河內史. 爲成都王所害.”이라
【頭註】
礉一作激.
郞下脫張載二字.


8-24 육사형陸士衡(육기陸機)이 낙양洛陽에 들어갔을 때 를 지으려고 했는데, 좌태충左太冲(좌사左思)이 그것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注+① 〈좌사별전左思別傳〉에 말하였다. “좌사는 태충太冲으로, 제국齊國임치臨淄 사람이다. 그의 부친 좌옹左雍필찰筆札(공문서 담당 직책)에서 관직을 시작했는데, 관장하고 경험한 바가 많아 전중어사殿中御史가 되었다. 좌사는 어릴 때 모친을 여의였기 때문에 좌옹이 그를 불쌍히 여겨 심하게 공부하라고 다그치지는 않았으나, 성장해서는 명문장을 광범위하게 읽고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였다. 사공司空 장화張華가 그를 좨주祭酒로 발탁하고 가밀賈謐이 그를 비서랑秘書郎으로 천거하였다. 가밀이 주살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저술활동에 전념하고,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기실참군記室參軍이 되어 달라고 청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에 〈삼도부三都賦〉를 짓고 있었는데 미처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몇 년 뒤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니, 〈삼도부〉의 개정은 그의 죽음에 임박해서야 완성되었다. 처음 〈촉도부蜀都賦〉를 지었을 때, 그 가운데 ‘는 높은 언덕에서 번개를 내뿜고, 벽계碧雞는 힘껏 날개를 떨쳐 구름을 헤치네. 에서 탄환이 날리니 탕탕쾅쾅 울리고, 에서 불빛이 솟구치니 번쩍이네.’ 했는데, 현재 ‘귀탄’ 이하의 구절이 없기 때문에 〈촉도부〉는 종종 문장이 같지 않다. 좌사의 사람됨은 관리의 재주가 없으나 문학의 재주가 있었다. 또 이라는 이유로 적지 않게 뽐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중시하지 않았다.”
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좌사가 〈삼도부〉를 지으려고 할 때 저작랑著作郞 장재張載를 찾아가 민주岷州공주邛州의 일에 대해 물었다. 10년 동안 구상하면서 대문․정원․울타리․변소에 모두 문구용품을 두고는 한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기록하였다.”
육사형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고는 그의 아우 육사룡陸士龍(육운陸雲)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이곳에서 어떤 가 〈삼도부〉를 지으려고 한다니,注+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강남의〉 지역 사람들은 중원 사람을 ‘(촌놈)’이라고 하였다.” 완성을 기다렸다가 그것으로 술동이나 덮으려고 하네.”
이후에 좌태충의 〈삼도부〉가 세상에 출현하자, 육사형이 매우 탄복하면서 그를 능가할 수 없다고 여겨 마침내 붓을 멈추었다.注+③ 〈육운별전陸雲別傳〉에 말하였다. “육운陸雲사룡士龍으로, 나라 대사마大司馬 육항陸抗의 다섯 번째 아들이고, 육기陸機동모제同母弟이다. 학문이 깊고 의젓하며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며, 용모가 아름답고 언변이 뛰어나 담론을 잘하며, 박식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저술을 잘하였다. 6세에 시를 지을 수 있었으니, 당시 사람들이 의 무리라고 하였다. 18세에 양주자사揚州刺史 주준周浚이 그를 주부主簿에 임명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태자사인太子舍人청하내사淸河內史가 되었다. 성도왕成都王(사마영司馬穎)에게 살해당했다.”
두주頭註
◦ 〈뇌교礌礉의〉 ‘’은 어떤 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 〈저작랑著作郞의〉 ‘’ 아래에 ‘장재張載’ 2자가 탈락되었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三都賦 : 左思가 10년의 공력을 들여 완성한 장편의 賦로, 〈吳都賦〉․〈魏都賦〉․〈蜀都賦〉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주3 金馬 : 뒤에 보이는 碧雞와 함께 전설 속에 등장하는 神物의 이름이다. ≪漢書≫ 〈郊祀志 下〉에 “어떤 사람이 益州에 금마신과 벽계신이 있으니 제사를 지내면 불러올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諫大夫 王褒로 하여금 부절을 지니고 가서 찾으라고 했다.” 하였다.
역주4 鬼彈 : 瘴氣를 가리킨다. 干寶의 ≪搜神記≫ 권12에 “漢나라 永昌郡 不違縣에 禁水가 있는데, 강물에 毒氣가 있어 단지 11월과 12월에만 겨우 건널 수 있고, 1월부터 10월까지는 건널 수 없으니, 건너면 그때마다 사람이 병들고 죽는다. 그 독기 가운데 惡物이 있으나 그 형체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낸다. 그 소리가 마치 무언가를 던져서 때리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무에 맞으면 부러지고 사람에 맞으면 상해를 입는다. 그 지방에서는 이를 귀탄이라고 부른다.” 하였다.
역주5 火井 : 천연가스가 분출되는 우물이다. 옛날에는 주로 그 물을 졸여서 소금을 생산하여 鹽井이라고도 하였다. ≪文選≫ 〈蜀都賦〉의 劉逵 注에 “蜀郡 臨邛縣 서남쪽에 화정이 있으니, 화정은 鹽井이다.” 하였다.
역주6 椒房 : 左思의 여동생으로서 西晉 武帝의 左貴賓이 된 左芬을 이른다. ‘초방’은 山椒를 벽에 바른 궁전으로, 후비의 궁전을 이르는데, 椒塗라고도 한다. 산초는 열매가 많이 열리므로 이를 섞어 벽을 발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한 것이다.
역주7 臧榮緖 : 호는 披褐선생으로, 南朝 宋나라 사람이고, 京口에 은거하면서 학생을 가르치고, ≪晉書≫ 110권을 저술하였다.(≪世說音釋≫, ≪世說箋本≫)
역주8 傖父(촌놈) : 南北朝시대에 남방 사람이 북방 사람의 거칠고 비루한 태도를 기롱하여 그들에 대해 멸시의 의미를 담아 부른 호칭이다.
역주9 項託 : ≪淮南子≫ 〈脩務訓〉에 “항탁은 7세 때에 孔子의 스승이 되었는데 공자가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하였고, 陳耀文의 ≪天中記≫에서 ≪圖經≫을 인용하여 “항탁은 魯나라 사람으로, 10세에 사망하니 당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小兒神이라고 불렀다.” 하였다. ≪敦煌變文集≫ 권3에 〈孔子項託相問書〉라는 글이 있다.
역주10 楊烏 : 楊雄의 둘째 아들 楊信으로, 字가 子烏이다. ≪法言≫ 〈問神〉에 “우리 집안의 童烏가 9세 때에 내가 ≪太玄經≫을 짓는 데 참여했다.” 하였다.
역주11 礌礉 : ≪水經注≫에는 ‘雷激’으로 되어 있다.(≪世說音釋≫, ≪世說箋本≫)
역주12 [張載] : 저본에는 ‘張載’가 없으나, ≪文選≫ 〈三都賦序〉의 李善 注에 인용된 臧榮緖의 ≪晉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3 : 저본과 ≪世說新語≫ 각본에는 ‘俊’으로 되어 있으나, 萬曆 14년본․安永本․≪晉書≫ 〈陸雲傳〉에는 ‘浚’으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에서 이 注는 〈賞譽〉의 ‘有問秀才’에 있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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