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傅東海王이 鎭許昌일새 以王安期로 爲記室參軍하고 雅相知重이라 勅世子毗曰
夫學之所益者
는 淺
하고 體之所安者
는 深
이라 閑習禮度
는 不如式瞻儀形
하고 諷味遺言
은 不如親承音旨
라 王參軍
은 之表
니 汝其師之
하라하다
或曰 王趙鄧三參軍
은 人倫之表
니 汝其師之
하라하니 謂安期
와 鄧伯道
와 趙穆也
注+① 趙吳郡行狀曰 “穆, 字季子, 汲郡人. 眞淑平粹, 才識淸通. 歷尙書郞ㆍ太傅參軍. 太傅越與穆及王承阮瞻鄧攸書曰 ‘禮, 「八歲出就外傅, 十年曰幼, 學.」, 明可以漸先王之教也. 然學之所受者淺, 體之所安者深. 是以閑習禮度, 不如式瞻軌儀, 諷味遺言, 不如親承辭旨. 小兒毗旣無令淑之資, 未聞道徳之風, 欲屈諸君時以閑豫, 周旋燕誨也.’ 穆歷晉明帝師ㆍ冠軍將軍ㆍ吳郡太守, 封南鄕侯.”라 袁宏
이 作名士傳
한대 直云 王參軍
이라 或云 趙家
에 先猶有此本
이라하다
15-35
왕안기王安期(
왕승王承)를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삼고 평소 중하게 대우하였다. 〈동해왕이〉 세자
사마비司馬毗에게 신칙하였다.
“대체로 배워서 얻는 것은 얕고 몸이 〈체득하여〉 편안히 여기는 것은 깊다. 예법과 법도를 익히는 것은 본이 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 못하고, 〈선현先賢의〉 유언遺言을 외고 음미하는 것은 직접 말씀을 듣는 것만 못하다. 왕참군(왕승)은 인재人才의 표상이니, 너는 그를 스승 삼으라.”
혹은 “
왕王ㆍ
조趙ㆍ
등鄧 세
참군參軍은 인재의 표상이니, 너는 그들을 스승 삼으라.”라고 하였다고도 하니,
안기安期(왕승)와
등백도鄧伯道(
등유鄧攸)와
조목趙穆을 말한다.
注+① ≪조오군행장趙吳郡行狀≫에 말하였다. “왕목王穆은 자字가 계자季子이고, 급군汲郡 사람이다. 참되고 맑고 온화하며 순수하였다. 상서랑尙書郞ㆍ태부참군太傅參軍을 역임하였다. 태부 사마월司馬越이 왕목ㆍ왕승王承ㆍ원첨阮瞻ㆍ등유鄧攸에게 편지하기를, ‘≪예기禮記≫에 하였으니, 분명 선왕의 가르침을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얕고 몸으로 익힌 것은 깊으니, 이 때문에 예제와 법도를 익히는 것은 법과 예제를 직접 실행해보는 것만 못하고, 유언遺言을 암송하고 음미하는 것은 직접 말씀을 듣는 것만 못합니다. 나의 아들 비毗는 특출한 자질이 없는데다가 도덕道德에 대한 가르침도 듣지 못하였으니, 제군들이 때때로 한가한 때 같이 노닐며 가르쳐주기 바랍니다.’ 하였다. 왕목은 진晉 명제明帝의 사師와 관군장군冠軍將軍, 오군태수吳郡太守를 역임하였고, 남향후南鄕侯에 봉해졌다.” 원굉袁宏이 ≪
명사전名士傳≫을 지었는데, 〈그 책에서는〉 단지 왕참군만을 언급했다. 혹자는
조목趙穆 집안에 오히려 먼저 이 판본이 있었다고도 한다.
注
◦ 유진옹劉辰翁:〈고사의 뜻이〉 매우 좋고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