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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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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僕射注+① 宋書曰 “王敬弘, 瑯琊臨沂人. 本名裕, 避高宗諱, 故稱字, 曾祖廙, 晉驃騎將軍, 祖胡之, 司州刺史, 父茂之, 晉陵太守. 敬弘少有淸尙, 起家本國左常侍, 歷官至僕射.”子恢之注+② 南史曰 “恢之, 敬弘長子, 位至新安太守․中大夫.” 被召爲秘書郎한대 僕射 奉朝請하고 語恢之曰
秘書有限이라 故有競이요 朝請無限이라 故無競하니 吾欲使汝處不競之地라하다
太祖 嘉而許之注+③ 宋書曰 “太祖文帝, 諱義隆, 高祖第三子.”하다


2-2【왕복야王僕射(왕유지王裕之)의注+① ≪송서宋書≫ 〈왕경홍전王敬弘傳〉에 말하였다. “왕경홍王敬弘낭야瑯琊 임기臨沂 사람이다. 본명은 왕유지王裕之인데, 고종高宗(유유劉裕)의 를 피하려고 로 칭한 것이다. 증조부 왕이王廙나라의 표기장군驃騎將軍이었고, 조부 왕호지王胡之사주자사司州刺史이었으며, 부친 왕무지王茂之진릉태수晉陵太守였다. 왕경홍은 젊어서부터 깨끗하고 고상하였고, 로 벼슬을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복야僕射에 이르렀다.” 아들 왕회지王恢之注+② ≪남사南史≫ 〈왕유지전王裕之傳〉에 “왕회지王恢之경홍敬弘(왕유지王裕之)의 큰아들이고 지위가 신안태수新安太守중대부中大夫에 이르렀다.” 하였다. 비서랑秘書郎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왕복야가 아들을 으로 삼아주기를 〈조정에〉 청하고 왕회지에게 말하였다.
경쟁을 해야 하나 봉조청은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경쟁이 없다. 나는 너를 경쟁이 없는 곳에 있게 하고 싶다.”
태조太祖가 가상히 여기고 허락하였다.注+③ ≪송서宋書≫ 〈문제본기文帝本紀〉에 “ 태조太祖 문제文帝의륭義隆이고, 고조高祖의 셋째 아들이다.” 하였다.
공의孔顗공의孔顗


역주
역주1 본국의 左常侍 : 西晉 때 瑯琊에 王國이 있었으며 常侍는 왕의 관원이다.(≪世說箋本≫)
역주2 奉朝請 : 古代에 제후가 봄에 천자를 조회하는 것을 ‘朝’, 가을에 조회하는 것을 ‘請’이라 하였으며, ‘봉조청’은 정기적으로 조회에 참가하는 것을 뜻하였다. 漢나라 때 외척․종실․제후들이 ‘봉조청’을 명목으로 조회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晉代에 奉車․駙馬․騎三都尉를 봉조청으로 삼으면서 이것이 관직명으로 변하였다. ≪宋書≫ 〈百官志〉에 의하면, 봉조청은 정해진 인원수가 없고 또 정식 관원이 아니다.(≪世說箋本≫, ≪世說音釋≫)
역주3 秘書郞은……때문에 : 비서랑은 4인으로 인원이 정해져 있고 명문가의 자제가 모두 탐내는 자리여서 순서를 기다려야 제수되었으며 관직에 있는 기간이 10일 정도였다.(≪宋書≫ 〈百官志〉)
역주4 [之] : 저본에는 ‘之’가 없으나, ≪南史≫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宋書≫에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역주5 爲求 : ≪唐六典≫ 〈秘書省〉에는 ‘求爲’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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