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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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庾闡 始作揚都賦 道溫庾하여
挺義之標하고 作民之望하니 方響則金聲이요 比德則玉亮이라하다
庾公 聞賦成 求看하고 兼贈貺之하니 更改望爲儁하고 以亮爲潤云注+① 中興書曰 “闡, 字仲初, (頴)[潁]川人, 太尉亮之族也. 少孤, 九歲便能屬文. 遷散騎侍郎․領大著作. 爲揚都賦, 邈絶當時. 五十四卒.”하다
【頭註】
劉云 “疑溫嶠․庾亮俱曾爲楊州.”
又云 “欲避庾公名, 故幷更旁韻也.”
又云 “作佞之俑.”


9-7 유천庾闡이 처음 〈〉를 지었을 때, 온교溫嶠유량庾亮을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온교는 의리의 표상을 세우고 유량은 백성의 희망[]이 되니,
유공庾公(유량)이 〈양도부〉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보여주기를 원하면서 아울러 선물을 주니, 유천이 ‘희망[]’을 ‘준걸[]’로 고치고 ‘광택[]’을 ‘윤택[]’으로 수정하였다.注+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유천庾闡중초仲初로, 영천潁川 사람이며, 태위太尉 유량庾亮의 친족이다.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9세에도 글을 지을 수 있었다. 산기시랑散騎侍郎영대저작領大著作(영저작랑領著作郞)이 되었다. 〈양도부揚都賦〉를 지었는데, 당시에 가장 훌륭한 작품이었다. 54세에 세상을 떠났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아마 온교溫嶠유량庾亮이 모두 예전에 양주楊州를 다스린 적이 있었던 듯하다.
유신옹劉辰翁유공庾公(유량庾亮)의 이름 ‘’을 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으로 고치고〉 아울러 이웃 구절의 운자韻字 〈‘으로〉 수정하였다.
유진옹劉辰翁:〈유천庾闡은〉 아첨을 떠는 허수아비와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揚都 : 南北朝시대에 建康(南京)을 이르던 명칭이다.
역주2 명성을……같다 : ≪孟子≫ 〈萬章 下〉에 “孔子를 集大成이라 이른다. 집대성이라는 것은 쇠로 만든 악기로 소리를 퍼뜨리고, 옥으로 만든 악기로 거둠이다. 金으로 소리를 퍼뜨린다는 것은 條理를 시작함이요, 玉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를 끝내는 것이다.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智의 일이요, 조리를 끝내는 것은 聖의 일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 金聲也者 始條理也 玉振之也者 終條理也 始條理者 智之事也 終條理者 聖之事也]” 하였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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