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思光
이 給暇東出
注+① 蕭子顯齊書曰 “張融, 字思光, 吳郡吳人. 父暢, 會稽太守. 融弱冠有名.”할새 世祖問
融近東出
한대 未有居止
하고 權牽小船
하여 於岸上住
注+② 南史曰 “張緒, 字思曼. 父演, 宋太子中舍人. 緖少知名, 清簡寡欲. 從伯敷及叔父鏡․從叔暢並貴異之. 孝武用爲尙書倉部郎․都令史.”니이다하다
2-12【
보補】
장사광張思光(
장융張融)이 휴가를 받아
注+① 소자현蕭子顯의 ≪남제서南齊書≫에 “장융張融은 자字가 사광思光이고 오군吳郡 오吳 사람이다. 부친 장창張暢은 회계태수會稽太守였다. 장융은 약관弱冠의 나이에 명성이 있었다.” 하였다. 세조世祖(
제齊 무제武帝 소색蕭賾)가 물었다.
“신은 뭍에는 집이 없고 배에서 사는데 물 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훗날에 임금이 그의 종형인 장사만張思曼(장서張緖)에게 물었더니 장사만이 대답하였다.
“장융은 근래 동쪽으로 나갔는데 정해진 거처는 없고 임시로 작은 배를 끌어다 언덕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注+② ≪남사南史≫ 〈장서전張緖傳〉에 말하였다. “장서張緖는 자字가 사만思曼이다. 부친 장연張演은 송宋나라의 태자중사인太子中舍人이었다. 장서는 젊어서부터 이름이 알려졌고 청렴하며 욕심이 없었다. 종백부 장부張敷, 숙부 장경張鏡, 종숙부 장창張暢이 모두 그를 귀하고 특별하게 여겼다. 효무제孝武帝가 그를 등용하여 상서창부랑尙書倉部郎․도령사都令史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