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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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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張思光 給暇東出注+① 蕭子顯齊書曰 “張融, 字思光, 吳郡吳人. 父暢, 會稽太守. 融弱冠有名.”할새 世祖問
卿住在何處오하니
答曰
臣陸處無屋이요 舟居非水니이다하다
後日 上以問其從兄思曼하니 思曼曰
融近東出한대 未有居止하고 權牽小船하여 於岸上住注+② 南史曰 “張緒, 字思曼. 父演, 宋太子中舍人. 緖少知名, 清簡寡欲. 從伯敷及叔父鏡․從叔暢並貴異之. 孝武用爲尙書倉部郎․都令史.”니이다하다


2-12【장사광張思光(장융張融)이 휴가를 받아 注+소자현蕭子顯의 ≪남제서南齊書≫에 “장융張融사광思光이고 오군吳郡 사람이다. 부친 장창張暢회계태수會稽太守였다. 장융은 약관弱冠의 나이에 명성이 있었다.” 하였다. 세조世祖( 무제武帝 소색蕭賾)가 물었다.
“경이 사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장사광이 대답하였다.
“신은 뭍에는 집이 없고 배에서 사는데 물 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훗날에 임금이 그의 종형인 장사만張思曼(장서張緖)에게 물었더니 장사만이 대답하였다.
“장융은 근래 동쪽으로 나갔는데 정해진 거처는 없고 임시로 작은 배를 끌어다 언덕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注+② ≪남사南史≫ 〈장서전張緖傳〉에 말하였다. “장서張緖사만思曼이다. 부친 장연張演나라의 태자중사인太子中舍人이었다. 장서는 젊어서부터 이름이 알려졌고 청렴하며 욕심이 없었다. 종백부 장부張敷, 숙부 장경張鏡, 종숙부 장창張暢이 모두 그를 귀하고 특별하게 여겼다. 효무제孝武帝가 그를 등용하여 상서창부랑尙書倉部郎도령사都令史로 삼았다.”


역주
역주1 동쪽으로 나갈 때 : 會稽로 갔다는 말이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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