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文季
注+① 范曄後漢書曰 “朱暉, 字文季, 南陽宛人. 家世衣冠. 暉早孤, 有氣决.”는 與張堪
注+② 范曄後漢書曰 “張堪, 字君游, 南陽宛人. 志美行厲, 世祖召拜郎中. 歷漁陽太守, 去職之日, 乘折轅車, 布被囊而已.”으로 同縣
이라 張於太學中
에 見文季
하고 甚重之
하여 把臂語曰
文季不敢對라 張亡後에 聞其妻子貧困하고 自往候視하여 厚賑贍之하다 子怪問曰
1-3【
보補】
주문계朱文季(
주휘朱暉)는
注+①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주휘전朱暉傳〉에 “주휘朱暉는 자가 문계文季이고 남양南陽 완宛 사람이다. 집안이 대대로 벼슬을 하였다. 주휘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으나 과감한 기백이 있었다.” 하였다. 장감張堪과
注+②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장감전張堪傳〉에 말하였다. “장감張堪은 자가 군유君游이고 남양 완宛 사람이다. 품은 뜻이 훌륭하고 행실이 방정하여 세조世祖(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그를 불러 낭중郎中에 임명하였다. 어양태수漁陽太守를 역임하였는데, 관직을 떠나는 날에 끌채가 부러진 마차를 타고 이불 포대만 가지고 갔다.” 같은
현縣 사람이다. 장감이
태학太學에서 주문계를 만나 그를 매우 존중하며 그의 팔을 잡고 말하였다.
“나의 처자식을 주생朱生(주휘朱暉) 그대에게 부탁하겠소.”
주문계가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장감이 죽은 뒤에 주문계가 그의 처자식이 빈곤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가서 살펴보고 후하게 구제해주었다. 그의 아들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대인大人께서는 장감과 교우하지 않았는데 어찌 갑자기 이렇게 하십니까?”
“장감이 전에 나를 알아주는 말을 하여 내가 그 말을 마음속으로 실천하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