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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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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微之注+① 劉昫唐書曰 “元稹, 字微之, 河南人, 魏昭成皇帝之後. 父寬, 比部郞中. 稹九歲能屬文, 十五兩經擢第. 二十應制擧, 才識兼茂明於體用科, 稹爲第一, 除右拾遺. 長慶二年, 拜平章事.” 唐詩紀事曰 “穆宗時, 嬪御多誦稹歌詞, 宮中號爲元才子.” 與劉夢得注+② 唐書曰 “劉禹錫, 字夢得, 彭城人. 祖雲․父溆, 世以儒學稱. 禹錫精於古文, 善五言詩近體, 文章復多才麗. 爲監察御史, 以附王叔文, 連加貶逐, 終太子賓客․分司東都.” 韋楚老注+③ 唐詩紀事曰 “韋楚老, 長慶進士, 終于拾遺.” 在白傅第注+④ 唐書曰 “白居易, 字樂天, 太原人, 北齊五兵尙書建之仍孫. 祖鍠․父季庚, 世敦儒業. 居易聰慧絶人. 貞元十四年, 高郢擢昇甲科, 授校書郞, 元和中, 爲集賢校理. 文辭富艶, 尤精詩筆, 所著歌詩, 意存諷賦, 箴時之病, 補政之闕, 士君子宗之. 往往流聞禁中, 章武納諫思理, 渴聞讜言, 召入翰林, 爲學士.”할새 各賦金陵懷古詩 劉先成하니 白覽之하고
四人探驪龍 子先獲珠하니 所餘鱗爪 何用邪注+⑤ 莊子曰 “河上有家貧, 緯蕭而食者, 子沒川, 得千金珠. 謂其子, ‘取石來鍛之. 夫千金之珠, 必在九重之泉驪龍頷下, 若能得珠者, 遭其睡也. 如使驪龍寤, 子尙奚微之有哉?’”아하다
於是 罷唱注+⑥ 劉詩曰 “王濬樓舡下益州, 金陵王氣黯然收. 千尋鐵鎖沉江底, 一片降幡出石頭. 人世幾回傷往事, 山形依舊枕淸流. 而今四海爲家日, 故壘蕭蕭蘆荻秋.”하다


9-35 【원미지元微之(원진元稹)가注+유후劉昫의 ≪구당서舊唐書≫ 〈원진열전元稹列傳〉에 말하였다. “원진은 미지微之로, 하남河南 사람이며, 〈북조北朝북위北魏소성황제昭成皇帝의 후예이다. 부친 원관元寬비부낭중比部郞中을 역임하였다. 원진은 9세에도 문장을 잘 짓고, 15세에 28세에 에 응시했는데 재식겸무명어체용과才識兼茂明於體用科에서 원진이 수석을 차지하여 우습유右拾遺에 제수되었다. 〈 목종穆宗장경長慶 2년(822)에 평장사平章事에 제수되었다.”
계유공計有功의 ≪당시기사唐詩紀事≫에 말하였다. “ 목종穆宗 때에 빈어嬪御(시첩侍妾궁녀宮女)들이 대부분 원진이 지은 노래의 가사를 암송했으니, 궁중에서는 〈그를〉 원재자元才子라고 불렀다.”
유몽득劉夢得(유우석劉禹錫)․注+유후劉昫의 ≪구당서舊唐書≫ 〈유우석열전劉禹錫列傳〉에 말하였다. “유우석은 몽득夢得으로, 팽성彭城 사람이다. 조부 유운劉雲과 부친 유서劉溆는 대를 이어 유학儒學으로 칭송받았다. 유우석은 고문古文에 정통하고, 오언근체시를 잘 지으며, 문장도 역시 재주와 문채가 풍부하였다.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을 때 태자빈객太子賓客비서감분사동도秘書監分司東都의 자리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위초로韋楚老注+계유공計有功의 ≪당시기사唐詩紀事≫에 말하였다. “위초로韋楚老는 〈 목종穆宗장경長慶 연간(821~824)에 진사進士가 되고, 습유拾遺의 자리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더불어 의 집에 있으면서注+유후劉昫의 ≪구당서舊唐書≫ 〈백거이열전白居易列傳〉에 말하였다. “백거이는 낙천樂天으로, 태원太原 사람이며, 〈북조北朝북제北齊오병상서五兵尙書 백건白建잉손仍孫(7대손)이다. 조부 백굉白鍠과 부친 백계경白季庚은 대를 이어 유학에 진력하였다. 백거이는 총명과 지혜가 매우 뛰어났다. 〈 덕종德宗정원貞元 14년(798)에 〈지공거知貢擧(진사시進士試 시험관)인〉 고정高郢이 〈그를〉 갑과甲科로 선발하여 교서랑校書郞을 제수하고, 〈헌종憲宗원화元和 연간(806~820)에 집현전교리集賢殿校理가 되었다. 문장이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시에 더욱 정통했는데, 〈그가〉 지은 시는 풍간諷諫에 의미를 두어 시대의 병폐를 경계하고 정치의 부족한 점을 보충했기 때문에 사군자士君子들이 으뜸으로 삼았다. 종종 〈그의 시가〉 궁중에 흘러 들어가 알려졌는데, 장무황제章武皇帝(헌종)는 간언을 받아들이고 도리를 생각하며 정직한 말을 애타게 들으려 했기 때문에 한림원翰林院에 불러 들여 학사學士로 삼았다.” 각각 〈금릉에서 옛일을 회고하다〉라는 시를 지었다. 유몽득劉夢得이 먼저 시를 완성하자, 백부가 보고 말하였다.
원진元稹원진元稹
“네 사람이 이룡驪龍(흑룡黑龍)을 더듬다가 그대가 먼저 여의주를 얻었으니, 〈여룡의〉 남은 비늘과 발톱은 어디에 쓰겠는가.”注+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 말하였다. “황하黃河 가에 집이 가난하여 쑥대로 발을 엮는 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물에 빠졌다가 천금 가치의 구슬을 얻었다. 그가 아들에게 말했다. ‘돌을 가져와서 그것을 깨버려라. 천금 가치의 구슬은 틀림없이 까마득히 깊은 못 속에 사는 이룡驪龍의 턱 아래 있을 것이니, 네가 그 구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여룡이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여룡이 깨어 있었다면 네가 도대체 어찌 신체의 조금이라도 남아 있겠느냐.’”
이에 〈나머지 사람들은〉 시 짓기를 그만두었다.注+유우석劉禹錫의 〈서새산에서 옛일을 회고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금릉(남경南京)의 왕기王氣는 빛을 잃고 사라졌네.

인간 세상 을 몇 번이나 아파하는가, 산세는 예전처럼 맑은 강물에 비쳐 있네.
지금 온 세상이 한 집안이 된 때, 옛 보루가 억새 속에 쓸쓸한 가을이구나.”


역주
역주1 拓拔什翼犍 : 北魏 황실의 성씨는 본래 拓拔인데, 孝文帝 宏 때 元氏로 바꾸었기 때문에 元稹이 탁발씨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역주2 兩經에 합격하며 : 唐宋시대 進士試에서 經書의 분량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었는데, ≪禮記≫․≪春秋左氏傳≫의 大經, ≪詩≫․≪周禮≫․≪儀禮≫의 中經, ≪易≫․≪尙書≫․≪春秋穀梁傳≫․≪春秋公羊傳≫의 小經으로 구분하여 학생 중에 대경 하나에만 통달해도 모두 관리에 보임하였다. 두 경전에 합격하는 것은 대경과 소경에서 각각 하나이거나 중경에서 둘을 통과해야 하고, 세 경전에 합격하는 것은 대경․중경․소경에서 각각 하나를 통과해야 하고, 다섯 경전에 합격하는 것은 대경을 모두 통과하고 중경과 소경에서 각각 하나를 통과하며 아울러 ≪孝經≫과 ≪論語≫를 통해야 한다.(≪新唐書≫ 〈選擧志 上〉) 당시에 元稹이 합격한 ‘양경’은 대경의 ≪예기≫와 소경의 ≪상서≫ 시험이었다.
역주3 制擧 : 唐나라 과거시험 가운데 하나로, 황제가 殿廷에서 직접 試題를 제출하는 것인데, 制科․制擧科라고도 한다.
역주4 王叔文과……유배되고 : 劉禹錫이 王伾․王叔文의 黨에 연좌되어 播州刺史로 좌천되었는데, 함께 좌천된 柳宗元이 유우석은 노모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상소하여 지역을 바꾸어주기를 청하자 憲宗이 連州로 옮겨주었다.
역주5 白傅(白居易) : 백거이가 만년에 太子少傅를 역임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역주6 西塞山懷古 : ‘서새산’은 湖北省 黃石市 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한데다가 강을 끼고 있어 吳나라의 서쪽 요새였다. 이 시의 제목이 〈金陵懷古〉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역주7 王濬의……내려오니 : 왕준은 魏晉시대 晉나라의 益州刺史로, 晉나라 武帝 太康 元年(280)에 吳나라를 칠 때에 龍驤將軍으로서 전함을 만들어 수군을 이끌고 내려갔다. ‘樓船’은 왕준이 만든 전함으로, 서로 연결하면 크기가 120步이고 수용인원이 2천 명에 달하며, 나무로 성을 만들어 망루를 세우고 그 위에서는 말을 달릴 수도 있었다.(≪晉書≫ 〈王濬列傳〉) ‘益州’는 진나라의 治所로 四川省 成都市이다.
역주8 천길……두었으나 : 吳나라는 晉나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긴 쇠사슬로 강을 가로막았는데, 王濬은 화력을 이용해 이 쇠사슬을 부수어 강물에 빠뜨렸다.
역주9 한……내걸렸네 : 王濬의 수군이 金陵에 이르렀을 때, 吳王 孫皓가 항복하였다. ‘石頭城’은 石首城이라고도 하는데, 江蘇省 南京市 淸凉山에 있다.
역주10 지난 일 : 吳․東晉․宋․齊․梁․陳 등 金陵을 수도로 건국했던 왕조들의 흥망성쇠를 이른다.
역주11 (入)[八] : 저본에는 ‘入’으로 되어 있으나, ≪舊唐書≫ 〈元稹列傳〉에 의거하여 ‘八’로 바로잡았다.
역주12 (持)[恃] : 저본에는 ‘持’로 되어 있으나, ≪莊子≫ 〈列禦寇〉에 의거하여 ‘恃’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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