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石虔
은 司空豁之長庶也
注+① 豁別傳曰 “豁, 字朗子, 溫之弟. 累遷荊州刺史, 贈司空.”라 小字鎮惡
이라 年十七八
에 未被舉
로대 而童隸已呼爲鎮惡郎
이라
嘗住宣武齋頭
라가 從征枋頭
할새 車騎沖沒
이어늘 左右莫能先救
하니 宣武謂曰
石虔聞之
하고 氣甚奮
하여 命朱辟爲副
하고 策馬於數萬衆中
하니 莫有抗者
라 徑致沖還
하니 三軍歎服
이라 河朔後以其名
으로 斷瘧
注+② 中興書曰 “石虔有才榦, 有史學, 累有戰功. 仕至豫州刺史, 贈後軍將軍.”이라
注
劉云 “小名鎮惡, 遂能斷瘧. 第不知當時桓溫媿此兒不.”
23-14
환석건桓石虔은
사공司空 환할桓豁의
서자庶子 중 맏이였고
注+① ≪환할별전桓豁別傳≫에 말하였다. “환할桓豁은 자字가 낭자朗子이고, 환온桓溫의 아우이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으며 사공司空에 추증되었다.” 어릴 적 이름은
진악鎮惡이었다. 17,8세에 아직 천거를 받지 못하였으나 어린 머슴들은 이미 그를 ‘
진악랑鎮惡郞’이라 불렀다.
언젠가
선무宣武(환온)의 집
서재書齋에 살다가
에 종군하였을 적에
좌우의 누구도 앞장서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선무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숙부가 적에 수중에 빠졌는데 너는 그 사실을 아느냐?”
환석건이 그 말을 듣고 기세가 매우 등등하여
주벽朱辟에게 명하여
부장副將을 삼고 수만 명의 적병 속으로 말을 달려가니,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자가 없었다. 곧장 환충을 데리고 돌아오니
삼군三軍이 탄복하였다.
하서河西와
삭방朔方 지역에서는 나중에
注+②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환석건桓石虔은 재간이 있었고 사학史學에 조예가 있었으며 여러 번 전공戰功을 세웠다. 벼슬이 예주자사豫州刺史에 이르렀으며 후군장군後軍將軍에 추증되었다.”
注
◦ 유진옹劉辰翁:〈환석건桓石虔의〉 어릴 때 이름이 ‘진악鎭惡’이더니 마침내 학질을 물리칠 수 있었다. 다만 당시에 환온桓溫이 이 아이를 부끄러워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