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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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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桓石虔 司空豁之長庶也注+① 豁別傳曰 “豁, 字朗子, 溫之弟. 累遷荊州刺史, 贈司空.” 小字鎮惡이라 年十七八 未被舉로대 而童隸已呼爲鎮惡郎이라
嘗住宣武齋頭라가 從征枋頭할새 車騎沖沒이어늘 左右莫能先救하니 宣武謂曰
汝叔落賊이어늘 汝知不
石虔聞之하고 氣甚奮하여 命朱辟爲副하고 策馬於數萬衆中하니 莫有抗者 徑致沖還하니 三軍歎服이라 河朔後以其名으로 斷瘧注+② 中興書曰 “石虔有才榦, 有史學, 累有戰功. 仕至豫州刺史, 贈後軍將軍.”이라
【頭註】
劉云 “小名鎮惡, 遂能斷瘧. 第不知當時桓溫媿此兒不.”


23-14 환석건桓石虔사공司空 환할桓豁서자庶子 중 맏이였고注+① ≪환할별전桓豁別傳≫에 말하였다. “환할桓豁낭자朗子이고, 환온桓溫의 아우이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으며 사공司空에 추증되었다.” 어릴 적 이름은 진악鎮惡이었다. 17,8세에 아직 천거를 받지 못하였으나 어린 머슴들은 이미 그를 ‘진악랑鎮惡郞’이라 불렀다.
언젠가 선무宣武(환온)의 집 서재書齋에 살다가 에 종군하였을 적에 좌우의 누구도 앞장서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선무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숙부가 적에 수중에 빠졌는데 너는 그 사실을 아느냐?”
환석건이 그 말을 듣고 기세가 매우 등등하여 주벽朱辟에게 명하여 부장副將을 삼고 수만 명의 적병 속으로 말을 달려가니,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자가 없었다. 곧장 환충을 데리고 돌아오니 삼군三軍이 탄복하였다. 하서河西삭방朔方 지역에서는 나중에 注+②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환석건桓石虔은 재간이 있었고 사학史學에 조예가 있었으며 여러 번 전공戰功을 세웠다. 벼슬이 예주자사豫州刺史에 이르렀으며 후군장군後軍將軍에 추증되었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환석건桓石虔의〉 어릴 때 이름이 ‘진악鎭惡’이더니 마침내 학질을 물리칠 수 있었다. 다만 당시에 환온桓溫이 이 아이를 부끄러워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역주
역주1 枋頭 : 방두는 河南省의 지명으로, 홍수를 막기 위해 漢 建安 9년(204)에 魏武王이 이곳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 漕運을 통하게 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東晉 太和 4년(369)에 桓溫과 前燕의 慕容垂가 이곳에서 전투하여 환온의 군대가 大敗한 곳이기도 하다.
역주2 車騎將軍……빠졌으나 : 桓沖이 前秦의 초대 황제인 苻健에게 포위되어 거의 함락될 지경에 빠졌던 것을 말한다.
역주3 그의……물리쳤다 : 당시 학질이 유행하였는데, 사람들이 병자에게 ‘환석건이 온다.’라고 말하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 당시인들이 환석건을 극히 두려워하였음을 보여준다.(≪晉書≫ 〈桓石虔傳〉)
역주4 : 陳은 ‘陣’의 이체자이다. 沒陳은 적진에 빠졌다는 뜻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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