支道林
과 許
와 謝盛德
이 共集王家
注+① 許詢․謝安․王濛.할새 謝
가 顧謂諸人
하되
今日은 可謂彦會니이다 時旣不可留요 此集固亦難常하니 當共言詠하여 以寫其懷니이다하다
正得漁父一篇
注+② 莊子曰 “孔子遊乎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孔子絃歌鼓琴, 奏曲未半, 有漁者下船而來, 鬚眉交白, 被髮揄袂, 行原以上, 距陸而止, 左手據膝, 右手持頤, 以聽. 曲終而招子貢․子路, 語曰 ‘彼何爲者也?’ 曰 ‘孔氏.’ 曰 ‘孔氏何治?’ 子貢曰 ‘服忠信, 行仁義, 飾禮樂, 選人倫, 孔氏之所治也.’ 曰 ‘有土之君歟?’ 曰 ‘非也.’ 漁人曰 ‘仁則仁矣, 恐不免其身.’ 孔子聞而求問之, 遂言八疵․四病, 以誡孔子.”이라
謝看題하고 便各使四坐通하니 支道林先通하여 作七百許語한대 敍致精麗하고 才藻奇拔하여 衆咸稱善이라 於是에 四坐各言懷畢이라 謝問曰
謝後麤難
하고 因自敍其意
하여 作萬餘語
한대 才峰秀逸
注+③ 文字志曰 “安, 神情秀悟, 善談玄理.”하여 旣自難干
하고 加意氣擬託
하여 蕭然自得
하니 四坐莫不厭心
이라 支謂謝曰
9-16
지도림支道林(
지둔支遁)․
허순許詢․
사안謝安 등
성덕盛德(
명현名賢)들이 함께
왕몽王濛의 집에 모였다.
注+① 허순許詢과 사안謝安과 왕몽王濛이다. 사안이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오늘은 언회彦會(현사賢士의 모임)라고 할 만합니다. 시간은 이미 붙잡아 둘 수 없고 이 모임도 진실로 역시 항상 있기 어려우니, 마땅히 함께 담론하여 자신의 회포를 쏟아내야 합니다.”
그러자 바로 〈
어부漁父〉 한 편을 찾아왔다.
注+②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말하였다. “공자孔子가 어둑어둑할 정도로 무성한 숲에서 노닐다가 행단杏壇에 앉아 쉬고 있었다. 공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금琴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연주하던 곡조가 채 반이 끝나지 않았을 때 어부 한 사람이 배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수염과 눈썹이 모두 하얀 노인이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매를 휘저으면서 늪지대를 걸어 올라와 언덕에 이르러 멈추고는 왼손으로 무릎을 짚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연주를 들었다. 곡이 끝나자 〈그는〉 자공子貢과 자로子路를 손짓으로 불러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물으니, ‘공씨입니다.’ 대답하였다. 〈그가〉 ‘공씨는 어떤 일을 하는가?’ 물으니, 자공이 ‘충신忠信을 일삼고 인의仁義를 실행하며, 예악禮樂을 닦고 인륜을 가르치는 것이 공씨가 하는 일입니다.’ 하였다. 〈그가〉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군주인가?’ 물으니, ‘아닙니다.’ 하였다. 어부가 ‘인자하다면 인자하다고 하겠지만, 아마도 그 몸은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는 청하여 〈재앙에 대해〉 물으니, 〈그가〉 마침내 와 을 말하여 공자를 경계시켰다.”
사안이 표제를 보고는 좌중의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해석하라고 하였다. 지도림이 먼저 해석하여 7백 여 마디의 말을 지었는데, 사리事理의 서술이 정밀하고 아름다우며, 표현의 재치가 기발하여 모든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이에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회포를 모두 피력하자 사안이 물었다.
“오늘의 담론은 스스로 다 말하지 않은 바가 거의 없습니다.”
사안이 이후에 대략 논란하고, 이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여 만 여 마디의 말을 지었는데,
재봉才峰(
재기才氣)이 빼어나
注+③ 왕음王愔의 ≪고금문자지목古今文字志目≫에 말하였다. “사안은 풍모가 수려하고, 현묘한 이치에 대한 담론에 능했다.” 이미 그 자체로 건드리기 어렵고
의기意氣를 보태어 〈논지에〉 의탁하여 명쾌하게 훌륭한 논설이 되니,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흡족해하였다. 지도림이 사안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 〈현묘한 경지에〉 나아갔기 때문에 절로 훌륭하게 된 것입니다.”
注
◦ 유진옹劉辰翁:〈어부漁父〉는 위작이니 어찌 중시할 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