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유치공庾穉恭(유익庾翼)이 형주자사荆州刺史일 때에注+① ≪유익별전庾翼別傳≫에 말하였다. “유익庾翼은 자字가 치공穉恭이고, 영천潁川언릉鄢陵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도량이 컸으며 당시의 논자論者들이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릴 만하다고 인정하였다. 형인 태위太尉유량庾亮이 죽자 조정에서 인재를 추천하는 것을 논의하여 유익을 칠주도독七州都督으로 삼았다. 후에 정남장군征南將軍과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승진하였다.” 깃털 부채를 진晉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에게 바쳤는데 무제는 그것이 쓰던 물건인 줄 의심하였다.注+② 부함傅咸의 〈우선부서羽扇賦序〉에 말하였다. “옛날 오吳나라 사람들은 단지 새의 날개를 잘라 〈바람을〉 부쳤는데, 바람이 네모나거나 둥근 부채보다 못하지 않았고 힘도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국中國(중원中原)에서는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난 뒤에 갑작스럽게 그것을 귀하게 여겨 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살펴보건대 유역庾懌이 백우선白羽扇을 진晉무제武帝에게 바치자 무제가 새것이 아닌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돌려준 적이 있었다. 유익庾翼의 일이라고는 듣지 못했다.시중侍中유소劉劭가 말했다.注+③ ≪문자지文字志≫에 말하였다. “유소劉劭는 자字가 언조彦祖이고 팽성彭城총정叢亭 사람이다. 조부 유눌劉訥은 사례교위司隸校尉이고, 부친 유송劉松은 성고령成皐令이었다. 유소는 박학다식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다재다능하고 초서와 예서에 뛰어났다. 처음에 영군참군領軍參軍으로 벼슬에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