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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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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白注+① 錢希白南部新書曰 “李白, 山東人, 父任城尉, 因家焉. 少與魯中諸生孔巢父․韓沔․裴政․張叔明․陶沔, 隱於徂徠山, 號竹溪六逸. 天寳中游會稽, 與呉筠隱剡中. 筠徴赴闕, 薦之於朝,待詔翰林.” 唐書曰 “白有逸才, 志氣宏放飄然, 有超世之心. 玄宗欲造樂府新詞, 召白, 白已醉臥酒肆. 召入, 以水灑面, 即秉筆, 成十餘章, 上嘉之. 嘗沉醉殿上, 引足令高力士脱靴, 由是斥去, 浪迹江湖. 嘗月夜乘舟, 自采石逹金陵, 中, 笑傲傍若無人. 後坐永王璘事, 長流夜郎, 遇赦還, 卒於宣城.” 登華山落雁峯注+② 山海經曰 “泰華之山削成, 而四方高五千仞.” 華山志曰 “三峯直上, 晴霽可覩.”
此處呼吸之氣 想通帝坐注+③ 史記曰 “中, 端門. 門左右, 掖門. 門内六星, 諸侯也. 其内五星, 五帝座.”하니 恨不携謝眺驚人詩来하여 搔首問青天爾注+④ 詩品曰 “朓奇章秀句, 往往警遒, 至爲後進士子之所嗟慕.”라하다


23-20 【이백李白注+전희백錢希白(전역錢易)의 에서 말하였다. “이백李白산동山東 사람인데, 부친이 임성위任城尉를 지내 그곳에 살았다. 젊어서 노중魯中(지금의 산동성山東省)의 제생諸生공소보孔巢父한면韓沔배정裴政장숙명張叔明도면陶沔과 더불어 조래산徂徠山에 은거하여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 불렸다. 천보天寳(742~756) 연간 중에 회계會稽를 유람하다가 오균呉筠과 함께 섬현剡縣에 은거하였다. 오균이 황제의 부름을 받아 궁궐로 갔을 때 조정에 그를 천거하여 대조한림待詔翰林이 되었다.”
구당서舊唐書≫ 〈문원文苑 〉에 말하였다. “이백은 뛰어난 재주를 지녔고 지기志氣가 자유분방하며 세속을 초월하는 마음을 지녔다. 현종玄宗(이융기李隆基)이 악부樂府의 새 가사歌詞를 짓고자 하여 이백을 불렀는데, 이백은 이미 취해서 주점酒店에 누워 있었다. 이백을 불러 들여 물을 얼굴에 뿌리자, 그가 즉시 붓을 잡고 10여 을 완성하니 주상이 가상하게 여겼다. 한번은 전각 위에서 만취하여 발을 들어 고역사高力士에게 신발을 벗기게 하였고, 이로 인해 내쫓겨 강호를 떠돌게 되었다. 언젠가 달 밝은 밤에 배를 타고 채석采石에서부터 금릉金陵에 이를 때까지 배안에서 황제가 하사한 비단 도포를 입은 채 웃으며 오만하게 굴어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듯 처신하였다. 후에 사면 받고 돌아와 선성宣城에서 죽었다.”
화산華山낙안봉落雁峯注+② ≪산해경山海經≫에 말하였다. “태화산은 깎아지른 듯이 이루어져 사방의 높이가 오천 길[]이다.”
화산지華山志≫에 말하였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은 것을 맑게 갠 날에 볼 수 있다.”
올라 말하였다.
“이곳은 최고의 호흡하는 기운이 있어 천제天帝성좌星座와 통할 것으로 생각되니,注+③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말하였다. 단문의 좌우에 있는 것이 액문掖門이다. 문 안에 있는 6개의 별은 제후이고, 그 안에 있는 5개의 별은 오제五帝의 자리이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사조謝朓의 시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한스러워, 머리를 긁적이며 푸른 하늘에 물을 뿐이로다.”注+④ ≪시품詩品≫에 말하였다. “사조謝朓가 지은 기발한 문장과 뛰어난 구절은 종종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후배 선비들이 감탄하고 사모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백李白이백李白


역주
역주1 ≪南部新書≫ : 10권이며, 北宋의 錢易(전이)가 편찬하였다. 典章制度․風俗․音樂․百戲 등을 폭넓게 수록하고 있어 唐代와 五代의 正史를 보완해주는 좋은 자료이다. 錢易(968~1026)는 字가 希白․寶月이고, 號가 慧照大師이다. 宋朝의 学者․政治家이다.(≪宋史≫ 〈錢易傳〉)
역주2 永王……유배되었다가 : 李璘(720?~757)의 本名은 李泽이고, 唐 玄宗의 16째 아들로 永王에 봉해졌다. 당 肅宗 至德 2년(757)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江西採訪使 皇甫铣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李白은 56세 때인 756년 겨울에 永王의 水军이 寻阳에 왔을 때 세 차례나 사신을 보내 그를 초빙하여 영왕의 막부에 참여하였고 〈赠韦秘书子春二首〉․〈别内赴征三首〉등의 시를 지은 적이 있다. 영왕이 처형된 후 이백 역시 하옥되었으나 宋若思와 崔涣에 의해 救命되었다. 그러나 영왕의 막부에 참여한 일로 인해 이백은 조정에 진출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夜郞에 유배되었다.
역주3 가운데가 端門이다 : 고대인들은 천체가 3垣(紫微垣․太微垣․天市垣)과 28宿(수), 기타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중 태미원에는 天帝가 거처하는데 그 동쪽에는 左執法, 서쪽에는 右執法이 있고 그 두 별자리 사이에 ‘端門’이 있다고 하였다. 즉 단문은 태미원의 南門에 해당한다.(≪史記≫ 〈天官書〉)
역주4 宫錦袍 : 황제가 하사한 비단 도포를 가리킨다. 이후로 李白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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