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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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褚期生 少時 謝公 甚知之하여 恒云
褚期生 若不佳者인댄 僕不復相士注+① 期生, 褚爽小字也. 續晉陽秋曰 “爽, 字茂弘, 河南人. 太傅裒之孫, 秘書監韶之子. 太傅謝安見其少時, 歎曰 ‘若期生不佳, 我不復論士.’ 及長, 果俊邁有風氣. 好老莊之言, 當世榮譽, 弗之屑也. 唯與殷仲堪善. 累遷中書郞․義興太守. 女爲恭帝皇后.”리라하다


14-12 저기생褚期生(저상褚爽)이 젊었을 때 이 그를 매우 인정하여 언제나 늘 말하곤 하였다.
“저기생이 만약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는 선비를 감식하지 않을 것이다.”注+기생期生저상褚爽의 어릴 적 이다.
속진양추續晉陽秋≫에 말하였다. “저상褚爽무홍茂弘이고, 하남河南 사람이다. 태부인 저부褚裒의 손자이고 비서감 저소褚韶의 아들이다. 태부 사안謝安이 그가 어렸을 때 만나보고서 탄복하기를, ‘저기생이 만약 훌륭하게 되지 않다면 나는 다시는 선비에 대해 논하지 않겠다.’ 하였다. 성장하여서 과연 출중하였으며 기풍이 있었다. 노장老莊의 말을 좋아하였고 당대의 영예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로지 은중감殷仲堪과만 교제하였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중서랑中書郞의흥태수義興太守가 되었다. 딸이 공제恭帝(사마덕문司馬德文)의 황후皇后가 되었다.


역주
역주1 謝公(谢安) : 320~385. 字는 安石이고, 陈郡 阳夏 사람이다. 東山에 은거하였다가 40세 이후 벼슬하여, 吴兴太守․侍中․吏部尚书․后将军․扬州刺史․尚书事 등 고관을 지냈다. 죽은 뒤 太傅에 추증되었고, 훌륭한 재상으로 평가된다. 謝東山․谢太傅․谢安石․谢相․谢公으로 불린다.(≪晉書≫ 〈謝安傳〉)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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