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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공孫興公(
손작孫綽)과
허현도許玄度(
허순許詢)는 모두 당대의 유명 인사였다. 혹자는 허현도의 고상한 정취를 소중히 여기면 손흥공의 방탕한 행위를 비루하게 여겼고, 혹자는 손흥공의 글 짓는 재간을 아꼈으나 허현도에게는 취할 게 없다고 여겼다.
注+① 송宋 명제明帝의 ≪문장지文章志≫에 말했다. “손작孫綽은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고 글을 짓는 데 뛰어났으며 허순許詢과 세속을 벗어난 담론을 함께 나누었다. 허순은 끝까지 뜻을 꺾지 않았으나 손작은 세속의 일에 얽혀 들었다.”
≪속진양추續晉陽秋≫에 말했다. “손작은 비록 문재文才가 있었지만 방종하고 추한 행동이 많아 당시 사람들이 비루하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