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諸葛武侯注+① 蜀志曰 “諸葛亮, 字孔明, 瑯琊陽都人. 父珪, 字君貢, 泰山郡丞. 亮早孤, 躬耕隴畝, 好爲梁父吟, 身長八尺. 每自比管仲․樂毅, 時人莫之許也, 唯博陵崔州平․(頴)[潁]川徐元直, 謂爲信然. 先主屯新野, 徐庶見先主曰 ‘諸葛孔明, 臥龍也, 將軍豈願見之乎?’ 先主曰 ‘君與俱來.’ 庶曰 ‘此人, 可就見, 不可屈致也.’ 先主遂詣亮, 謂關羽․張飛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累遷丞相․益州牧, 率衆北征, 卒于渭南.” 與司馬宣王注+② 晉紀曰 “司馬懿, 字仲達, 河內溫人. 猜忌多權數. 魏武聞其有狼顧相, 召使前行, 令反顧, 面正向後, 而身不動. 又嘗夢三馬同食一槽, 甚惡焉, 謂太子丕曰 ‘司馬懿, 非人臣也, 必與汝家事.’ 太子素與帝善, 每相全佑.” 聖賢群輔錄曰 “河內司馬懿仲達․潁川陳群長文․譙朱鑠彦才․濟陰吳質季重, 爲魏文帝四友.”으로 治軍渭濱하고 克日交戰할새 宣王 戎服蒞事하고 使人視武侯한대 獨乘素輿하고 葛巾毛扇으로 指麾三軍 隨其進止하니 宣王歎曰
諸葛君 可謂名士矣로다하다


12-2 【제갈무후諸葛武侯(제갈량諸葛亮)가注+①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 말하였다. “제갈양은 공명孔明으로, 낭야瑯琊 양도陽都 사람이다. 부친 제갈규諸葛珪군공君貢으로, 태산군승泰山郡丞을 역임하였다. 제갈양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몸소 농토를 경작하며, 을 즐겨 읊고 키는 8척이었다. 매번 자신을 관중管仲악의樂毅에 비유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으나, 오직 박릉博陵영천潁川만은 정말 그렇다고 하였다. 선주先主(유비劉備)가 신야新野에 주둔하고 있을 때, 서서가 선주를 뵙고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이니, 장군께서는 어찌 그를 만나려 하지 않으십니까?’ 하니, 선주가 ‘당신이 그와 함께 오시오.’ 하였다. 서서가 ‘이 사람은 찾아가 만날 수는 있어도 욕되게 불러올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선주가 마침내 제갈양을 찾아가 〈만난〉 뒤에 관우關羽장비張飛에게 ‘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네.’ 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승상丞相익주목益州牧이 되었고, 군대를 통솔하여 북쪽 나라를 정벌하다가 위수渭水 남쪽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마선왕司馬宣王(사마의司馬懿)과注+간보干寶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사마의司馬懿중달仲達로, 하내河內 사람이다. 〈타인을〉 의심하고 미워하며 권모술수가 많았다. (삼국三國)나라 무제武帝(조조曹操)는 그에게 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불러 앞으로 걸어가게 하다가 뒤를 돌아보게 하자, 얼굴이 똑바로 뒤를 향한 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또 〈무제가〉 한 번은 이 하나의 구유에서 함께 꼴을 먹는 꿈을 꾸고는 매우 불쾌하여 태자太子 조비曹丕에게 ‘사마의는 남의 신하가 될 자가 아니니, 틀림없이 ’ 하였다. 태자는 평소에 선제宣帝(사마의)와 사이가 좋아서 〈그가 위험할 때마다〉 매번 보호하고 도와주었다.”
에 말하였다. “하내河內의 중달 사마의, 영천潁川장문長文 진군陳群, 초군譙郡언재彦才 , 제음濟陰계중季重 (삼국三國) 문제文帝(조비曹丕)의 사우四友(네 명의 사우師友)이다.”
더불어 위수渭水 가에서 군대를 정돈하고 날짜를 약속하여 교전하였다. 사마선왕이 갑옷을 입은 채 전투에 임하고 사람을 시켜 제갈무후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제갈무후는〉 홀로 흰 수레를 탄 채 갈건葛巾을 머리에 두르고 백우선白羽扇을 들고서 을 지휘하니 〈삼군은〉 나아가고 멈추기를 〈그의 지휘에〉 따랐다. 사마선왕이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제갈량諸葛亮제갈량諸葛亮
제갈군諸葛君(제갈무후)은 명사名士라고 할 만하구나.”


역주
역주1 梁父吟 : ‘양보’는 梁甫라고도 하는데, 泰山 아래에 있는 작은 산이다. ‘양보음’은 樂府 가운데 楚調의 곡명으로, 본디 죽음을 슬퍼하는 挽歌인데, 高人과 志士가 이 시를 읊어 심회를 풀기도 하였다.
역주2 崔州平 : 博陵 安平 사람으로, 이름은 鈞, 字는 符平이다. 太尉 崔烈의 아들이자 議郞 崔均의 아우이며, 漢나라 虎賁中郞將․西河太守를 역임하였다. 獻帝가 즉위한 뒤에 부친이 董卓에게 피살되자 袁紹를 따라 山東에서 거병하여 동탁을 토벌하였다.
역주3 徐元直(徐庶) : 潁川 長社 사람으로, 字는 元直이다. 劉備의 참모였는데, 曹操의 계략에 빠져 조조에게 귀순하였다.
역주4 狼顧相 : 사람의 관상 가운데 몸은 앞을 향하면서 이리처럼 고개만 돌려 뒤를 보는 상을 이른다.
역주5 세 마리 말 : 司馬懿와 그의 아들 司馬師․司馬昭를 상징한다.
역주6 너의……것이다 : 曹丕를 위시한 曹氏 집안의 권력을 찬탈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司馬懿의 손자 司馬炎에 이르러 魏나라를 찬탈하여 晉나라를 건국하였다.
역주7 聖賢群輔錄 : 고대에 성현을 보좌했던 신하들의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四八目≫이라고도 한다. ≪陶潛集≫에 실려 있기 때문에 도잠의 저작이라고 생각해왔으나, ≪四庫全書總目提要≫에 “성현군보라고 명명했으나, 魯나라의 三祖, 鄭나라의 七穆, 晉나라의 六卑, 魏나라의 四友 및 王莽 때의 唐林과 唐遵, 魏晉시대 진나라의 반역자 王敦 등도 그 사적을 기록했으니, 명칭과 실제가 부합하지 않으니 절대 도잠의 작품이 아니다.” 하였다.
역주8 朱鑠(주삭) : ?~226? 沛國 譙縣 사람으로, 字는 彦才이다. 魏(三國) 文帝(曹丕)의 참모 가운데 한 명이다.
역주9 吳質 : 177~230. 兗州 濟陰 사람으로, 字는 季重이다. 魏(三國) 文帝(曹丕)의 참모 가운데 한 명으로, 관직이 振威將軍에 이르렀다.
역주10 三軍 : 한 나라의 군대 전체를 이른다. 1군은 12,500명으로, 천자의 군대는 六軍, 제후의 군대는 三軍이었다. 후에는 右翼․中央․左翼의 각 군대 또는 先鋒․中軍․後衛의 각 군대를 총칭하였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