友人王眉子
는 淸通簡暢
하고 嵇延祖
는 弘雅劭長
하고 董仲道
는 卓犖有致度
注+① 王隱晉書曰 “董養, 字仲道. 太始初, 到洛干祿求榮. 永嘉中, 洛城東北角步廣里中地陷, 中有二鵝, 蒼者飛去, 白者不能飛. 問之博識者, 不能知. 養聞, 歎曰 ‘昔周時所盟會狄泉, 此地也. 有二鵝, 蒼者胡象, 後胡當入洛, 白者不能飛, 此國諱也.’” 謝鯤化論序曰 “陳留董仲道於元康中, 見恵帝廢楊悼后, 升太學堂, 歎曰 ‘建此堂也, 將何爲乎? 每見國家赦書, 謀反逆皆赦, 孫殺祖父母, 子殺父母不赦, 以爲王法所不容也, 奈何公卿處議, 文飾禮典, 以至此乎? 天人之理旣滅, 大亂斯起.’ 顧謂謝鯤ㆍ阮孚曰 ‘易稱「知幾其神乎!」, 君等可深藏矣.’ 乃與妻荷擔入蜀, 莫知其所終.”라하다
15-41 사유여謝幼輿(사곤謝鯤)가 말하였다.
“나의 친구
왕미자王眉子(
왕현王玄)는 사리에 통달하고 시원시원하며,
혜연조嵇延祖(
혜소嵆紹)는 도량이 넓고 덕행이 고상하며,
동중도董仲道(
동양董養)는 기량이 탁월하고 고상한
풍격風格을 지녔다.”
注+① 왕은王隱의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에 말하였다. “동양董養은 자字가 중도仲道이다. 태시太始(265~274) 초에 낙양洛陽에 이르렀는데, 봉록과 영화를 구하지 않았다. 영가永嘉(307~313) 연간에 낙양성 동북쪽 변두리 보광리步廣里의 땅이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오리 두 마리가 있었는데, 청색 오리는 날아가고 백색 오리는 날지 못하였다. 그 까닭을 박식한 자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동양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옛날 이 이곳이다. 지금 오리 두 마리가 나타났으니, ’ 하였다.”
사곤謝鯤의 〈무화론서无化論序〉에 말하였다. “진류陳留 사람 동중도董仲道(동양)가 원강元康(291~299) 연간에 을 보고 태학당太學堂에 올라가 탄식하기를, ‘이 당堂을 세운 것은 장차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매번 국가가 내린 사서赦書를 보면 반역反逆을 도모한 죄는 모두 사면해 주었지만, 손자가 조부모를 살해한 죄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죄는 사면해주지 않고 왕법王法이 허용하지 않는 죄라고 여겼으니, 어찌 공경公卿이 죄를 결단할 때 예법禮法을 문식하는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천리天理와 인륜人倫이 이미 무너졌으니 대란大亂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다. 사곤謝鯤과 원부阮孚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주역≫에 하였으니, 그대들은 깊이 몸을 감추라.’ 하고는 그 처와 함께 짐을 싸서 촉蜀지역에 들어갔고, 그가 어디에서 생을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注
◦
왕세무王世懋:
과
이상의 사람을 어찌
미자眉子(
왕현王玄)의 무리에 견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