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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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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幼輿曰
友人王眉子 淸通簡暢하고 嵇延祖 弘雅劭長하고 董仲道 卓犖有致度注+① 王隱晉書曰 “董養, 字仲道. 太始初, 到洛干祿求榮. 永嘉中, 洛城東北角步廣里中地陷, 中有二鵝, 蒼者飛去, 白者不能飛. 問之博識者, 不能知. 養聞, 歎曰 ‘昔周時所盟會狄泉, 此地也. 有二鵝, 蒼者胡象, 後胡當入洛, 白者不能飛, 此國諱也.’” 謝鯤化論序曰 “陳留董仲道於元康中, 見恵帝廢楊悼后, 升太學堂, 歎曰 ‘建此堂也, 將何爲乎? 每見國家赦書, 謀反逆皆赦, 孫殺祖父母, 子殺父母不赦, 以爲王法所不容也, 奈何公卿處議, 文飾禮典, 以至此乎? 天人之理旣滅, 大亂斯起.’ 顧謂謝鯤ㆍ阮孚曰 ‘易稱「知幾其神乎!」, 君等可深藏矣.’ 乃與妻荷擔入蜀, 莫知其所終.”라하다
【頭註】
王云 “逢萌ㆍ梅福以上人, 豈眉子輩可擬?”


15-41 사유여謝幼輿(사곤謝鯤)가 말하였다.
“나의 친구 왕미자王眉子(왕현王玄)는 사리에 통달하고 시원시원하며, 혜연조嵇延祖(혜소嵆紹)는 도량이 넓고 덕행이 고상하며, 동중도董仲道(동양董養)는 기량이 탁월하고 고상한 풍격風格을 지녔다.”注+왕은王隱의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에 말하였다. “동양董養중도仲道이다. 태시太始(265~274) 초에 낙양洛陽에 이르렀는데, 봉록과 영화를 구하지 않았다. 영가永嘉(307~313) 연간에 낙양성 동북쪽 변두리 보광리步廣里의 땅이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오리 두 마리가 있었는데, 청색 오리는 날아가고 백색 오리는 날지 못하였다. 그 까닭을 박식한 자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동양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옛날 이 이곳이다. 지금 오리 두 마리가 나타났으니, ’ 하였다.”
사곤謝鯤의 〈무화론서无化論序〉에 말하였다. “진류陳留 사람 동중도董仲道(동양)가 원강元康(291~299) 연간에 을 보고 태학당太學堂에 올라가 탄식하기를, ‘이 을 세운 것은 장차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매번 국가가 내린 사서赦書를 보면 반역反逆을 도모한 죄는 모두 사면해 주었지만, 손자가 조부모를 살해한 죄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죄는 사면해주지 않고 왕법王法이 허용하지 않는 죄라고 여겼으니, 어찌 공경公卿이 죄를 결단할 때 예법禮法을 문식하는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천리天理인륜人倫이 이미 무너졌으니 대란大亂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다. 사곤謝鯤원부阮孚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주역≫에 하였으니, 그대들은 깊이 몸을 감추라.’ 하고는 그 처와 함께 짐을 싸서 지역에 들어갔고, 그가 어디에서 생을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 이상의 사람을 어찌 미자眉子(왕현王玄)의 무리에 견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周나라……狄泉 : 魯나라 僖公 29년(B.C. 631)에 晉나라가 周․宋․齊․陳․蔡․秦의 大夫들과 周나라의 狄泉에 모여 會盟하고 鄭나라를 토벌할 일을 모의하였다. 狄泉은 지금의 洛陽市 옛 성안에 있었다.(≪春秋左氏傳≫ 僖公 29년)
역주2 청색……뜻이다 : 晉나라는 金德이고 白色을 숭상한다. 여기에서 청색 오리는 날아가고 백색 오리는 날지 못하였으니, 이는 백색을 숭상하는 진나라가 망한다는 뜻이다.(≪世說音釋≫․≪世說箋本≫)
역주3 惠帝가……것 : 楊悼后는 晉 武帝의 황후인 武悼楊皇后를 가리킨다. 무제가 죽고 혜제가 즉위하자 혜제의 황후인 賈后가 楊悼后를 역모를 꾀했다고 모함하여 金墉에 유폐시키고 侍婢 10여 인을 빼앗은 뒤에 음식을 끊어 8일 만에 죽게 한 일을 말한다.(≪晉書≫ 〈五行 中〉)
역주4 幾微를……신묘하다 : ≪周易≫ 〈繫辭傳 下〉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기미를 귀신같이 신묘하게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인용하였다.
역주5 (下)[不] : 저본에는 ‘下’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과 ≪晉書≫ 〈董養傳〉과 ≪世說箋本≫에 의거하여 ‘不’로 바로잡았다.
역주6 (卒)[今] : 저본에는 ‘卒’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과 ≪晉書≫ 〈隱逸傳〉과 ≪世說箋本≫에 의거하여 ‘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元)[无] : 저본에는 ‘元’으로 되어 있으나, ≪晉書≫ 〈隱逸傳〉과 ≪世說箋本≫에 근거하여 ‘无’로 바로잡았다. 〈无化論〉은 董養의 저술이다.
역주8 逢萌 : 東漢 때 北海 사람이며 字가 子康이다. 魏(三國) 嵇康의 ≪聖賢高士傳≫에 난세에 벼슬하지 않고 은둔한 ‘四子’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인들이 ‘四子’로 꼽은 사람은 逢萌ㆍ徐房ㆍ李曇ㆍ王遵이다.
역주9 梅福 : 漢나라 九江郡 壽春 사람으로, 字가 子眞이다. 관직은 南昌尉를 지냈는데, 王莽이 정권을 잡자 집을 떠나 은거하였다. 후세에 그가 수련을 하여 신선이 되는 것에 관한 전설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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