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王冏
이 爲大司馬
하여 輔政
注+① 虞預晉書曰 “冏, 字景治, 齊王攸子也. 少聰慧, 及長, 謙約好施. 趙王倫篡位, 冏起義兵誅倫, 拜大司馬, 加九錫, 政皆決之, 而恣用群小, 不復朝覲, 遂爲長沙王所誅.”이러니 嵇紹
가 爲侍中
하여 詣冏咨事
한대 冏設宰會
하여 召葛旟
注+② 齊王官屬名曰 “旟, 字虛旟, 齊王從事中郞.” 晉陽秋曰 “齊王起義, 轉長史, 旣克趙王倫, 與董艾等專執威權, 冏敗, 見誅.”와 董艾等
注+③ 八王故事曰 “艾, 字叔智, 弘農人. 祖遇, 魏侍中, 父綏, 秘書監. 艾少好功名, 不修士檢. 齊王起義, 艾爲新汲令, 赴軍, 用艾領右將軍, 王敗, 見誅.”하여 共論時宜
라 旟等
이 白冏
하되
公은 協輔皇室하시니 令作事可法이니이다 紹雖官卑나 職備常伯하고 操絲比竹은 蓋樂官之事니 不可以先王法服으로 爲伶人之業이니이다 今逼高命하여 不敢苟辭니 當釋冠冕하고 襲私服이니이다 此紹之心也니이다하니
10-19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이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정사를 보좌하고 있었다.
注+①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사마경司馬冏은 자字가 경치景治로, 제왕齊王 사마유司馬攸(사마염司馬炎의 동모제同母弟)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고, 장성해서는 겸손하고 절제하며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황위를 찬탈하자 사마경이 의병을 일으켜 사마륜을 주벌하였다. 대사마大司馬에 제수되고 이 더해지며, 정사가 모두 그에게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소인배들을 기용하고는 더 이상 조회에 참석하지 않고, 결국 장사왕長沙王(사마예司馬乂)에게 죽임을 당했다.” 가
시중侍中이 되어 사마경을 찾아가 정사에 대해 물었는데, 〈당시에〉 사마경은
갈여葛旟와
注+② ≪제왕관속명齊王官屬名≫에 말하였다. “갈여葛旟는 자字가 허여虛旟로, 제왕의 종사중랑從事中郞이었다.”
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제왕齊王(사마경司馬冏)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갈여는〉 장사長史로 전임되었고, 〈제왕이〉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을 이긴 뒤에는 동애董艾 등과 함께 위세와 권력을 독점하다가 사마경이 패배하자 죽임을 당하였다.” 동애董艾 등을
注+③ 에 말하였다. “동애는 자字가 숙지叔智로, 홍농弘農 사람이다. 조부 동우董遇는 위魏(삼국三國)나라의 시중侍中을, 부친 동수董綏는 비서감秘書監을 역임하였다. 동애는 젊을 때부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기를 좋아하고 선비의 예절을 닦지 않았다. 제왕齊王(사마경司馬冏)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동애는 신급현新汲縣 현령으로 있다가 군대에 참여하니, 〈제왕이〉 동애를 기용하여 우장군右將軍에 임명했는데, 제왕이 패배하자 죽임을 당하였다.” 불러
시의時宜(당대의 필요한 조치)를 함께 논의하고 있었다. 갈여 등이 사마경에게 아뢰었다.
혜소嵇紹
“혜시중嵇侍中(혜소)은 관현악기를 잘 다루니 공께서 그에게 연주하게 하시지요.”
마침내 〈혜소에게〉 악기를 주었는데 혜소가 거절하고 수락하지 않자, 사마경이 말하였다.
“오늘 함께 즐기려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거절하시오?”
“공께서는 황실을 보좌하고 계시니
해야 합니다. 제가 비록 관직은 낮지만 직분이
상백常伯(시중)이고, 관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악관樂官의 일이니,
선왕先王의
법복法服(예법에 따라 규정된 복식)을 입은 채
영인伶人(악관)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공의 명령에 몰려 감히 구차히 사양하지 못하니, 마땅히
이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注
◦ 중산대부中散大夫(혜강嵇康)의 아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비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