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空
이 在北府
할새 桓宣武惡其居兵權
이라注+① 南徐州記曰 “徐州人多勁悍, 號精兵. 故桓溫常曰‘京口酒可飲, 箕可用, 兵可使.’” (郄)[郗]於事機素暗
하여 遣牋詣桓
호대
嘉賓
이 出行
이라가 於道上聞信至
하고 急取牋視竟
에 寸寸毀裂
하고 便回還更作牋自陳
호대
宣武得牋大喜
하고 即詔轉公督五郡會稽太守
하다注+② 晉陽秋曰 “大司馬將討慕容暐, 表求申勸平北愔及袁真等. 愔以羸疾求退, 詔大司馬領愔所任.” 按中興書, 愔辭此行, 溫責其不從, 轉授會稽. 世說爲謬.
注
劉云 “嘉賓入幕, 豈得已哉! 視其處父子間, 有足取者.”
21-6
치사공郗司空(
치음郗愔)이
에 있을 때
환선무桓宣武(
환온桓溫)는 치사공이
병권兵權을 차지한 것을 싫어하였다.
注+① 에 말하였다. “서주徐州 사람들은 대부분 굳세고 거칠어 ‘정병精兵’으로 불렸다. 그러므로 환온桓溫은 ‘경구京口의 술은 마실 만하고 키[기箕]는 쓸 만하며 병사는 부릴 만하다.’라고 늘 말하곤 하였다.” 치사공은 본래 일의 기미를 알아차리는데 어두워서 환선무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길에서 〈부친의〉
사자使者가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급히 편지를 가져다 다 읽고 난 뒤 북북 찢어버리고는 곧바로 돌아가 〈부친 대신〉 다시 편지를 써서 이렇게 말하였다.
“늙고 병든 저는 인사人事를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한가로운 땅에서 저 자신을 보양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환선무가 편지를 받고 크게 기뻐하고는, 즉시 조서를 내려
공公을
로 임명하였다.
注+② ≪에 말하였다. “대사마大司馬(환온桓溫)가 장차 모용위慕容暐를 토벌하려 할 때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평북장군平北將軍 치음郗愔과 원진袁真 등에게 〈출정하기 위한〉 행장을 꾸리도록 거듭 돈유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치음이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물러나기를 구하니, 〈황제가〉 대사마에게 조서를 내려 치음이 맡았던 일을 맡게 하였다.”
〈유효표가〉 살펴보니, 에는 치음이 출정하지 않으려 하자 환온은 그가 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계태수로 옮겨 제수하였다고 하였으니, ≪세설신어≫가 틀렸다.
注
◦
유신옹劉辰翁:〈환온이〉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가
부자간父子間에 처신한 것을 보니 충분히 취할 만한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