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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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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玠 從豫章至下都한대 人久聞其名하여 觀者如堵牆이라 先有羸疾하여 體不堪勞하여 遂成病而死하니 時人 謂看殺衛玠注+① 玠別傳曰 “玠在羣伍之中, 寔有異人之望. 髫齔時, 乘白羊車於洛陽市上, 咸曰 ‘誰家璧人?’ 於是, 家門․州黨號爲璧人.”注+② 按永嘉流人名曰 “玠以永嘉六年五月六日至豫章, 其年六月二十日卒.” 此則玠之南度豫章四十五日, 豈暇至下都而亡乎. 且諸書皆云玠亡在豫章, 而不云在下都也.라하다
【頭註】
劉云 “謂候見者多, 徒欲看耳.”


24-17 위개衛玠예장豫章으로부터 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의 명성을 들어왔던 터라 만나러 오는 자들이 담장을 둘러친 것처럼 많았다. 위개는 이전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몸이 피로를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병이 들어 죽으니, 당시 사람들은 “구경꾼들이 위개를 죽였다.”고 하였다.注+① 〈위개별전衛玠別傳〉에 말하였다. “위개衛玠는 여러 사람들 속에 있으면 진실로 남다른 자태가 있었다. 때에 낙양洛陽의 시가지에 를 타고 가면 〈사람들이〉 모두 ‘누구 집안의 벽인璧人(옥인玉人)인가?’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가문과 고을에서 〈그를〉 벽인이라고 불렀다.”注+② 살펴보건대, ≪영가류인명永嘉流人名≫에 “위개는 영가永嘉 6년(312) 5월 6일에 예장豫章에 이르렀고, 그해 6월 20일에 죽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다면 위개가 남쪽으로 예장에 온 뒤 45일 동안에 어찌 하도下都에 갔다가 〈돌아와〉 죽을 겨를이 있었겠는가. 또한 여러 책에서 모두 위개는 예장에서 죽었다고 하였지, 하도에서 죽었다고 하지 않았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구경꾼들이 위개를 죽였다는 것은〉 인사하러 온 자들이 많았으나, 단지 〈위개를〉 구경하고자 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역주
역주1 下都(建業) : 건업은 建康으로, 西晉의 도읍이 洛陽이었기 때문에 건업을 ‘하도’라고 하였다.
역주2 髫齔(초츤) :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치아를 갈 무렵인 7,8세 쯤 되는 어린아이를 이른다.
역주3 白羊車 : 흰 양이 끄는 작은 수레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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