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南郡은 好獵이러니 每田狩에 車騎甚盛하여 五六十里中에 旌旗蔽隰하고 騁良馬하여 馳擊若飛하며 雙甄는 所指를 不避陵壑이라 或行陳不整하고 麏兎騰逸하면 參佐無不被繫束이라
桓道恭은 玄之族也니 時爲賊曹參軍하여 頗敢直言이라 常自帶絳綿繩箸腰中하니 玄問
公獵에 好縛人士하니 會當被縛이라 手不能堪芒也라
玄自此小差
注+① 桓氏譜曰 “道恭, 字祖猷, 彝同堂弟也. 父赤之, 太學博士. 道恭歷淮南太守․僞楚江夏相. 義熙初, 伏誅.”하니라
20-3 환남군桓南郡(환현桓玄)은 사냥을 좋아하여 매번 들판으로 사냥을 나갈 때면 〈동원하는〉 거마車馬가 매우 성대하였다. 5, 6십리에 걸쳐 깃발이 땅을 뒤덮었고 준마駿馬를 내달려 마치 나는 듯 〈사냥감을〉 쫓아가 잡았으며 좌우의 대오隊伍는 지시하는 곳이면 언덕이나 골짜기도 피하지 않고 달렸다. 혹 대오가 가지런하지 않거나 노루나 토끼가 튀어서 달아나기라도 하면 보좌관들은 모두 포박당하였다.
환도공桓道恭은 환현의 친족으로 당시
이었는데 자못 과감하게 직언을 했다. 〈환도공이〉 늘 붉은색 무명실로 만든 밧줄을 허리에 차고 있자 환현이 물었다.
“공께서 사냥하시면서 사람들을 포박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언젠가〉 포박당하게 될텐데 제 손은 포승줄의 까끄라기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환현이 이때부터 조금 나아졌다.
注+① ≪환씨보桓氏譜≫에 말했다. “환도공桓道恭은 자字가 조유祖猷로 환이桓彝의 사촌동생이다. 부친 환적지桓赤之는 태학박사太學博士였다. 환도공은 회남태수淮南太守와 의 강하상江夏相을 역임했다. 의희義熙 연간(405~418) 초에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