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7 【
보補】
소영사蕭穎士에게
注+① 이화李華가 찬술한 〈영사문집서穎士文集序〉에 말하였다. “난릉蘭陵 사람 소영사蕭穎士는 자字가 무정茂挺이다. 19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가 표문을 올려 〈재상 최원崔圓이〉 양주공조揚州功曹로 삼았다. 소군蕭君(소영사)은 문장과 제도를 자기의 임무로 삼았는데,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인정하였다. 세상을 떠났을 때 문인들이 문원선생文元先生이라는 시호를 지었다.”注+에 말하였다. “소영사蕭穎士는 후생을 발탁하고 격려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와 같은 사람들이 모두 〈그의〉 장려와 품평을 통해 명사가 되었다. 천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추중推重하여 ‘소공조는 이화李華와 명성이 나란하다.’라고 칭찬하였고, 세상에서는 소리蕭李라고 일컬었다.” 하인 한 명이 있었는데, 〈그는〉 소영사를 10여 년 동안 섬겼으나, 〈소영사는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번번이 100여 대를 때리니 〈그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사람들이 간혹 그에게 〈소영사를〉 떠나도록 격동시키면 그 하인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