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世祖
注+① 宋書曰 “帝名駿, 文帝第三子.”가 嘗賜謝中書寳劒
注+② 宋書曰 “謝莊, 字希逸, 陳郡陽夏人, 太常弘微子也. 七歲能屬文. 仕至光祿大夫, 卒謚憲子.” 南史曰 “莊韶令美風儀, 宋文帝見而異之, 曰 ‘藍田生玉, 豈虛也哉.’”한대 謝
가 以與魯豫州送别
注+③ 宋書曰 “魯爽, 小名女生, 扶風郿人. 祖宗之, 父軌. 爽少有武藝, 世祖以爲左軍將軍․都督豫州諸軍事. 與南郡王義宣作逆, 薛安都臨陣刺爽, 傳首京都.”이라 後
에 魯
가 作逆
이라 世祖
가 嘗因宴集
하여 問劒所在
하니 謝曰
世祖大悦
注+④ 史記曰 “秦攻趙邯鄲, 武安君不肯行. 於是免武安君爲士伍, 遷之陰密. 至杜郵, 使使者賜之釼自裁.”하다
5-4【
보補】
송宋 세조世祖(
유준劉駿)가
注+① ≪송서宋書≫ 〈효무제기孝武帝紀〉에 “황제의 이름은 준駿으로, 문제文帝의 셋째 아들이다.” 일찍이
사중서謝中書(
사장謝莊)에게
보검寳劒을 내려준 적이 있는데,
注+② ≪송서宋書≫ 〈사장전謝莊傳〉에 말하였다. “사장謝莊은 자字가 희일希逸이고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으로 태상太常 사홍미謝弘微의 아들이다. 7살에 글을 지을 줄 알았다. 벼슬이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이르렀으며, 죽어서 헌자憲子라는 시호를 받았다.”
≪남사南史≫ 〈사밀전謝密傳〉에 말하였다. “사장謝莊은 총명하고 풍모가 아름다웠는데, 송宋 문제文帝가 보고서 남다르게 여겨 ‘에서 옥玉이 나온다는 것이 어찌 거짓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사중서가 이를
노예주魯豫州(
노상魯爽)를
송별送别하면서 주었다.
注+③ ≪송서宋書≫ 〈노상전魯爽傳〉에 말하였다. “노상魯爽은 어릴 적 이름이 여생女生으로 부풍扶風 미郿 사람이다. 조부는 노종지魯宗之이고 부친은 노궤魯軌이다. 노상은 어려서 무예가 뛰어나 세조世祖가 좌군장군左軍將軍과 도독예주제군사都督豫州諸軍事로 삼았다. 남군왕南郡王 유의선劉義宣과 반란을 일으켰는데, 설안도薛安都가 전장에서 노상을 찔러 죽이고 그 머리를 경도京都로 보냈다.” 뒤에 노예주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세조가 한번은 연회를 열었다가 검의 소재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중서가 말했다.
“예전에 노상魯爽과 헤어질 때에 폐하陛下 대신에 제가 그에게 〈백기白起가〉 두우杜郵에서 〈자결한 것처럼 하라고〉 주었습니다.”
세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注+④ ≪사기史記≫ 〈백기전白起傳〉에 말하였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한단邯鄲을 공격하였는데, 무안군武安君(백기白起)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소양왕昭襄王이〉 무안군武安君의 작위를 박탈하여 사졸士卒로 삼고는 음밀陰密로 추방하였다. 두우杜郵에 이르자 사자使者를 시켜 칼을 내려 자결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