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康樂父
는 不慧早亡
注+① 南史曰 “靈運父瑍, 生而不慧. 位秘書郞, 早亡.”하고 康樂
은 好臧否人物
이어늘 叔混
이 患之
하여 欲加裁折
이나 未有方也
라 謂宣遠曰
非汝
면 莫能
注+② 王儉七志曰 “謝瞻, 字宣遠, 陳郡人. 幼能屬文. 宋黃門郞.”
幼童傳曰 “瞻幼而悟, 五歲能通玄理.”이라하고
乃與晦曜
注+③ 南史曰 “曜, 小字阿多, 弘微之兄. 歷御史中丞․彭城王義康驃騎長史.” 弘微等
注+④ 書曰 “弘微, 初名密. 曾祖萬, 晉西中郞將, 祖韶, 車騎司馬, 父思, 武昌太守. 弘微居身淸約. 歷位中庶子, 加侍中.”共遊戱
에 命瞻與靈運共車
라 旣上
에 便商較人物
하니 宣遠謂之曰
20-10 【
보補】
사강악謝康樂(
사영운謝靈運)의 부친은 총명하지 못했고 일찍 죽었다.
注+① ≪남사南史≫에 말했다. “사영운謝靈運은 부친 사환謝瑍은 나면서부터 총명하지 못했다. 벼슬은 비서랑秘書郞이었으며 일찍 죽었다.” 사강락은 인물을 품평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숙부인
사혼謝混은 이를 염려해 제재를 가하려고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조카인〉
사선원謝宣遠(
사첨謝瞻)에게 말했다.
“네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注+② 왕검王儉의 에 말했다. “사첨謝瞻은 자字가 선원宣遠으로 진군陳郡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지었다. 유송劉宋의 황문랑黃門郞이었다.”
에 말했다. “사첨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에 〈노장老莊의〉 현묘한 이치에 능통했다.”
그리고는
사회謝晦․
사요謝曜․
注+③ ≪남사南史≫에 말했다. “사요謝曜는 어릴 적 이름이 ‘아다阿多’로 사홍미謝弘微의 형이다. 어사중승御史中丞과 팽성왕彭城王 유의강劉義康의 표기장사驃騎長史를 지냈다.”사홍미謝弘微 등과
注+④ ≪송서宋書≫에 말했다. “사홍미謝弘微는 처음 이름이 밀密이었다. 증조부 사만謝萬은 진晉의 서중랑장西中郞將, 조부 사소謝韶는 거기사마車騎司馬, 부친 사사謝思는 무창태수武昌太守였다. 사홍미는 몸가짐이 청정하고 검약하였다. 중서자中庶子를 지냈고, 시중侍中을 더해 받았다.” 함께 놀러나가면서 사첨에게 사영운과 같은 수레를 타게 하였다. 〈사영운은〉 수레에 오르자 바로 인물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사선원이 그에게 말했다.
“비서랑秘書郞(사환謝瑍)께서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담론하는 사람들도 〈비서랑을 두고〉 서로 간에 생각이 일치하지 않더구나.”
사영운은 〈이 말을 듣자〉 입을 다물었고 인물에 대한 품평이 이때부터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