見此芒芒
하니 不覺百端交集
이라 苟未免有情
이면 亦復誰能遣此
注+① 晉諸公贊曰 “衛玠, 字叔寶, 河東安邑人. 祖父瓘, 太尉, 父恒, 黄門侍郞.” 玠別傳曰 “玠穎識通達, 天韻標令, 陳郡謝幼輿敬以亞父之禮. 娶樂廣女, 裴叔道曰 ‘妻父有冰淸之姿, 壻有璧潤之望, 所謂秦晉之匹也.’ 爲太子洗馬. 永嘉四年, 南至江夏, 與兄別於梁里澗, 語曰 ‘之義, 人之所重, 今日忠臣致身之道, 可不勉乎.’ 行至豫章, 乃卒.”리오하다
注
劉云 “似癡, 似嬾, 似多, 似少, 轉使柔情易斷, 非丈夫語. 然非我輩, 未易能言.”
4-17 위세마衞洗馬(위개衛玠)가 처음 장강長江을 건너려고 할 때, 심신이 초췌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망망한 〈강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온갖 생각이 교차한다. 만약 〈사람으로서〉 감정이 없다면 모를까 또 누가 이런 〈심사를〉 떨쳐버릴 수 있겠는가.”
注+① ≪진제공찬晉諸公贊≫에 말하였다. “위개衛玠는 자字가 숙보叔寶이고 하동河東 안읍安邑 사람이다. 조부 위관衛瓘은 태위太尉였고, 부친 위항衛恒은 황문시랑黄門侍郞이었다.”
≪위개별전衛玠別傳≫에 말하였다. “위개는 학식이 뛰어나고 사리에 통달하였으며 타고난 풍격이 훌륭하여 진군陳郡의 사유여謝幼輿(사곤謝鯤)가 부친에 버금하는 예로써 공경하였다. 악광樂廣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배숙도裴叔道(배하裴遐)가 ‘장인은 얼음처럼 맑은 자태를 지녔고, 사위는 벽옥壁玉처럼 윤택한 명망이 있으니, 이른바 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자세마太子洗馬가 되었다. 영가永嘉 4년(310)에 남쪽으로 강하江夏에 이르러
注
◦ 유진옹劉辰翁:〈위세마衞洗馬의 말은〉 멍한 듯 나른한 듯 많은 듯 적은 듯한 것이 점차 사람들의 여린 마음을 금방이라도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게 만드니 장부가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리가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注
◦ 왕세무王世懋:지금 읽어도 애가 끊어지려 하는데 더구나 당시에 덕음德音을 직접 들은 이들은 오죽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