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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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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丞相 拜司徒하여 而歎曰
劉王喬 若過江이면 我不獨拜公注+① 曹嘉之晉紀曰 “疇有重名, 永嘉中爲閻鼎所害. 司徒蔡謨每歎曰 ‘若使劉王喬得南渡, 司徒公之美選也.”이라하다


15-65 왕승상(왕도王導)이 사도司徒에 임명되자 탄식하며 말하였다.
(유주劉疇)가 강을 건넜다면 나 혼자 삼공三公에 임명되지는 않았을 것이다.”注+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유주劉疇는 명망이 높았으나 영가永嘉(307~313) 연간에 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도司徒 채모蔡謨가 매번 탄식하기를, ‘만약에 유왕교劉王喬(유주)가 남쪽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면 사도공司徒公에 선발되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劉王喬 : 王喬는 劉疇의 字이다. 彭城 사람으로, 부친 王訥은 司隸校尉였다. 유주는 名理에 대한 담론에 뛰어났다. 永嘉(307~313) 연간에 司徒左长史를 지냈다.(≪晉書≫ 〈劉隗傳〉)
역주2 曹嘉之 : 曹嘉라고도 한다. 西晉 沛国 谯县(지금의 安徽 毫州) 사람이다. 魏(三国) 楚王 曹彪의 아들이다. 晉에서 벼슬하여 国子博士, 东莞太守, 前军咨议를 역임하였다. ≪晉纪≫ 10卷을 편찬하였다.
역주3 閻鼎 : ?~312. 字는 台臣이고 西晉 天水郡(지금의 甘肃省 天水市) 사람으로, 太傅 东海王(司马越)의 参军으로 시작하여 豫州刺史를 역임했다. 염정은 晉 孝愍帝(司馬鄴)를 추대하여 자신의 고향에 가까운 서쪽의 關中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山東 출신인 유주 등이 관중으로 가는 것을 꺼려 도망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晉書≫ 〈閻鼎傳〉)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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