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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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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胡兒注+① 胡兒, 謝朗小字也. 續晉陽秋曰 “朗, 字長度, 安次兄據之長子. 安蚤知之. 文義艶發, 名亞於玄. 仕至東陽太守.” 語庾道季注+② 道季, 庾龢小字. 徐廣晉紀曰 “龢, 字道季, 太尉亮子也. 風情率悟, 以文談致稱於時. 歷仕至丹陽尹, 兼中領軍.”하되
諸人 莫當就卿談하리니 可堅城壘라하니
庾曰
若文度來하면 我以偏師待之注+③ 王中郞傳曰 “坦之, 字文度, 太原晉陽人. 祖東海太守承, 淸淡平遠. 父述, 貞貴簡正. 坦之器度淳深, 孝友天至, 譽輯朝野, 標的當時. 累遷侍中․中書令, 領北中郞將․徐兗二州刺史.”하고 康伯來하면 濟河焚舟注+④ 春秋傳曰 “秦伯伐晉, 濟河焚舟.” 杜預曰 “示必死.”하리라하다


4-55 사호아謝胡兒(사랑謝朗)가注+호아胡兒사랑謝朗의 어릴 적 이름이다. ≪속진양추續晉陽秋≫에 말하였다. “사랑은 장도長度이고 사안謝安의 둘째 형 사거謝據의 맏아들이다. 사안이 일찍부터 그의 뛰어남을 알아보았다. 문장의 문채가 화려하여 명성이 사현謝玄에 버금갔다. 벼슬은 동양태수東陽太守에 이르렀다.” 유도계庾道季(유화庾龢)에게注+도계道季유화庾龢의 어릴 적 이름이다. 에 말하였다. “유화는 도계道季이고 태위太尉 유량庾亮의 아들이다. 풍아風雅하고 영민했으며 문아文雅한 담론으로 당시에 칭송받았다.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쳐 단양윤丹陽尹에 이르렀으며 중령군中領軍을 겸하였다.”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성루城壘를 견고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도계가 말했다.
注+③ 〈왕중랑전王中郞傳〉에 말하였다. “왕탄지王坦之문도文度이고 태원太原 진양晉陽 사람이다. 조부 동해태수東海太守 왕승王承청고淸高하고 담박淡泊하며 성정性情이 온화하고 흉금이 원대하였다. 부친 왕술王述은 욕심이 없고 장중하며 엄격하고 곧았다. 왕탄지는 도량이 넓고 효성과 우애를 타고났으며, 조야朝野에 명성이 자자하여 당시의 모범이 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시중侍中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고 북중랑장北中郞將서주徐州연주兗州 두 곳의 자사刺史를 지냈다.” 강백康伯(한백韓伯)이 온다면 황하黃河를 건너고서 배를 태우겠습니다.”注+④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문공文公 3년에 “진백秦伯(목공穆公)이 을 정벌할 때에 황하黃河를 건너고는 배를 태워버렸다.”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는 〈에서〉 “필사의 각오를 보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徐廣의 ≪晉紀≫ : 徐廣은 東晉 시대의 관료 및 학자이다. 孝武帝에게 학문을 인정받아 비서감이 되었다. 국사를 편찬하라는 安帝의 명을 받고 편년체의 ≪晉紀≫ 46권을 완성했다. 陸機, 謝靈運 등이 지은 같은 이름의 사서가 많이 있다.
역주2 저녁에……것이니 : 원문은 ‘莫當就卿談’이다. ‘莫’는 ‘暮’의 古字이므로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新釋漢文大系 世說新語≫와 ≪中國歷代名著全譯叢書 世說新語全譯≫도 ‘暮’의 뜻으로 보았다. ≪世說箋疏≫에서는 ‘莫’자를 추측을 나타내는 말로 보고 ‘或’과 뜻이 가깝다고 하였다. 이 경우 번역문은 ‘경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니’가 된다.
역주3 만약……태우겠습니다 : 한쪽 군대로만 대적한다는 말은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黃河를 건넌 뒤 배를 태운다는 말은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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