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夷甫婦
는 郭泰寧女
注+① 晉諸公贊曰 “郭豫, 字泰寧, 太原人. 仕至相國參軍, 知名, 早卒.”니 才拙而性剛
하고 聚斂無厭
하며 干豫人事
하여 夷甫患之而不能禁
이라
時
에 其鄉人幽州刺史李陽
은 京都大俠
注+② 晉百官名曰 “陽, 字景祖, 高尙人. 武帝時, 爲幽州刺史.”
語林曰 “陽, 性遊俠. 盛暑, 一日詣數百家別, 賓客與別, 常塡門, 遂死于几下, 故懼之.”으로 猶漢之樓護
注+③ 漢書遊俠傳曰 “護, 字君卿, 齊人. 學經傳, 甚得名譽. 母死, 送葬車三千兩. 仕至天水太守.”하니 郭氏憚之
라 夷甫驟諫之
하고 乃曰
19-11
왕이보王夷甫(
왕연王衍)의 부인은
곽태녕郭泰寧(
곽예郭豫)의 딸이다.
注+① ≪진제공찬晉諸公贊≫에 말했다. “곽예郭豫는 자字가 태령泰寧으로 태원太原 사람이다. 벼슬은 상국참군相國參軍에 이르렀고, 이름은 〈널리〉 알려졌으나 일찍 죽었다.” 재주가 없고 성품이 억세며 끝없는 욕심으로 재물을 긁어모으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여 왕이보가 이를 근심하였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당시 같은 고향 사람인
유주자사幽州刺史 이양李陽은
경도京都의 크게 이름난
협객俠客으로
注+② ≪진백관명晉百官名≫에 말했다. “이양李陽은 자字가 경조景祖로 고상高尙 사람이다.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 때 유주자사幽州刺史가 되었다.”
≪어림語林≫에 말했다. “이양李陽은 성품이 유협遊俠이었다. 〈유주자사幽州刺史가 되어 임지에 가야 할 때〉 날씨가 몹시 더웠는데 하루에 수백 집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하였고 손님들이 그와 작별 인사를 하려고 늘 문을 가득채웠다. 그래서 마침내 〈인사를 나누다가〉 안석에 앉아 있다가 죽고 말았다. 그래서 〈곽씨가 인맥이 풍부하였던〉 그를 두려워하였다.” 한漢나라 때의
와 같은 존재였는데
注+③ ≪한서漢書≫ 〈유협전遊俠傳〉에 말했다. “누호樓護는 자字가 군경君卿으로 제齊 사람이다. 경전經傳을 배워 〈학문이 높았기 때문에〉 큰 명예를 얻었다. 모친이 사망했을 때 호상護喪하는 수레가 3천 대였다. 벼슬은 천수태수天水太守에 이르렀다.” 곽씨는 그를 껄끄럽게 여겼다. 왕이보가 누차 충고하면서
“나만 당신이 옳지 않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이양도 당신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라고 하니,
注
◦ 유진옹劉辰翁:〈왕이보王夷甫는〉 사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