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魏明帝 爲外祖母하여 築館於甄氏注+① 魏傳曰 “帝諱叡, 字元仲, 文帝太子. 以其母廢, 未立爲嗣, 文帝與俱獵, 見子母鹿. 文帝射其母, 應弦而倒. 復令帝射其子. 帝置弓泣曰 ‘陛下已殺其母, 臣不忍復殺其子.’ 文帝曰 ‘好語動人心.’ 遂定爲嗣, 是爲明帝.” 魏書曰 “文昭甄皇后, 明帝母也. 父逸, 上蔡令. 烈宗即位, 追封上蔡君. 嫡孫象襲爵, 象薨, 子暢嗣. 起大第, 車駕親自臨之.” 旣成 自行視하고 謂左右曰
當以何爲名고하니
侍中繆襲注+② 文章敍錄曰 “襲, 字熙伯, 東海蘭陵人. 有才學, 累遷侍中․光祿勳.”
陛下 聖思 齊於哲王하고 過於曾閔이니이다 此館之興 情鍾舅氏이니 宜以渭陽爲名注+③ 秦詩曰 “渭陽, 康公念母也. 康公之母, 晉獻公之女, 文公遭驪姬之難, 未反而秦姬卒. 穆公納文公, 康公時爲太子, 贈送文公于渭之陽, 念母之不見也, ‘我見舅氏, 如母存焉.’” 按魏書帝於後園爲象母起觀, 名其里曰渭陽. 然則象母, 卽帝之舅母, 非外祖母也. 且渭陽爲館名, 亦乖舊史也.이니이다하다


3-17 명제明帝(조예曹叡)가 외조모外祖母를 위해 견씨甄氏의 땅에 을 지었다.注+① ≪위말전魏末傳≫에 말하였다. “명제明帝이고 원중元仲이며 문제文帝(조비曹丕)의 태자太子이다. 그 모친(견씨甄氏)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아직 후사로 정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명제를 데리고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어미와 새끼 사슴을 보았다. 문제가 그 어미를 쏘자 활시위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다시 명제에게 그 새끼를 쏘게 하자, 명제가 활을 놓고 울면서 ‘폐하陛下께서 이미 그 어미를 죽이셨기에 신은 차마 다시 그 새끼를 죽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문제가 ‘좋은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하고 마침내 후사로 정했으니, 이 사람이 명제이다.”
위서魏書≫에 말하였다. “문소견황후文昭甄皇后명제明帝의 모친이다. 부친은 견일甄逸인데 상채령上蔡令이었다. 열종烈宗(명제)이 즉위即位하고서 상채군上蔡君추봉追封하였다. 적손嫡孫견상甄象작위爵位를 이어받았고, 견상이 죽자 그 아들 견창甄暢이 뒤를 이었다. 큰 저택을 지어주고 어가를 타고 직접 방문했다.”
완성되자 직접 가서 보고는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은 무엇으로 이름을 지어야 하겠는가?”
시중侍中 무습繆襲이 말했다.注+② ≪문장서록文章敍錄≫에 말하였다. “무습繆襲희백熙伯이고 동해東海 난릉蘭陵 사람이다. 재주와 학문이 있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시중侍中광록훈光祿勳에 이르렀다.”
“폐하의 깊은 생각은 옛 현철賢哲한 임금들과 나란하고 망극한 효성은 증삼曾參민자건閔子騫보다 더하십니다. 이 을 세운 것은 외숙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니, 위양渭陽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注+③ ≪시경詩經≫ 〈진풍秦風 위양渭陽〉의 〈모전毛傳에〉 말하였다. “〈위양渭陽〉은 강공康公이 모친을 생각한 시이다. 진 강공의 모친(진희秦姬)은 헌공獻公의 딸이었는데, 문공文公을 만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전에 진희가 죽었다. 그 후 목공穆公이 진 문공을 본국으로 들여보내니, 진 강공이 이때 태자太子가 되어 진 문공을 위수渭水 북쪽에서 전송하면서 모친을 볼 수 없음을 생각하여 ‘내 외숙外叔(진 문공)을 보니 모친이 생존한 듯하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위서魏書≫에 명제明帝후원後園견상甄象의 모친을 위해 누대를 세우고, 그 마을을 ‘위양渭陽’이라고 이름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견상甄象의 모친은 바로 명제明帝의 외숙모이고 외조모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위양’으로 저택의 이름을 삼았다는 것도 옛 사서의 기록과 어긋난다.


역주
역주1 驪姬의 亂 : 여희는 춘추시대 晉 獻公의 妃이다. 원래 헌공의 후궁인데 총애를 받아 왕비가 되었다. 아들인 奚齊를 태자로 삼으려고 태자인 申生을 비롯하여 重耳(晉 文公)와 夷吾 등을 모함하여 차례로 죽이려고 하였고 이로 인해 진나라는 혼란에 빠져 국력이 크게 쇠퇴하였다.(≪春秋左氏傳≫ 莊公 28년)
역주2 (本)[末] : 저본에는 ‘本’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 ≪世說新語≫에 의거하여 ‘末’로 바로잡았다. ≪三國志≫ 〈魏志 明帝紀〉 裴松之의 注에도 ≪魏末傳≫으로 되어 있다. ≪隋書≫ 〈經籍志〉에 “魏末傳二卷”이라고 보인다.
역주3 (岡)[罔] : 저본에는 ‘岡’으로 되어 있으나, 元刊本 ≪世說新語≫와 安永本에 의거하여 ‘罔’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