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의 깊은 생각은 옛
현철賢哲한 임금들과 나란하고 망극한 효성은
증삼曾參과
민자건閔子騫보다 더하십니다. 이
관館을 세운 것은 외숙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니,
위양渭陽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注+③ ≪시경詩經≫ 〈진풍秦風 위양渭陽〉의 〈모전毛傳에〉 말하였다. “〈위양渭陽〉은 진秦 강공康公이 모친을 생각한 시이다. 진 강공의 모친(진희秦姬)은 진晉 헌공獻公의 딸이었는데, 진晉 문공文公이 을 만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전에 진희가 죽었다. 그 후 진秦 목공穆公이 진 문공을 본국으로 들여보내니, 진 강공이 이때 태자太子가 되어 진 문공을 위수渭水 북쪽에서 전송하면서 모친을 볼 수 없음을 생각하여 ‘내 외숙外叔(진 문공)을 보니 모친이 생존한 듯하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위서魏書≫에 명제明帝가 후원後園에 견상甄象의 모친을 위해 누대를 세우고, 그 마을을 ‘위양渭陽’이라고 이름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견상甄象의 모친은 바로 명제明帝의 외숙모이고 외조모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위양’으로 저택의 이름을 삼았다는 것도 옛 사서의 기록과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