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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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予刻世說豫章하여 舊所病勾棘難通者 亦旣有倫矣로대 惜也 子固讎對之功闕焉이여 探字疎句 往往而訛하여 幾於誤人하고 標評小語 亦續有得이나 時復循覽 而恨其未覈也
家兄元美 嘗並何氏語林 刪其無當하고 合爲一編한대 久乃散落이라
友人張仲立 得而嗜之하여 次第修註하고 而更爲訂何氏之乖迕하고 與益其註之未備하니 經年하여 殺靑滿室이라 會予將之閩中할새 手以相示하고 且請序作者之意하니 予豫章後重校善本 不吝授之
盖臨川 孝標 功緒略當하며 元朗 羽翼 意亦勤矣하니 昔猶璋判이나 今始珪合이라 予所研覈不寘者 將無鄭玄之遇服氏哉
若孝標一註 疑有羼入中間하여 稍爲指擿이나 終未得起斯人于九原하여 令千載洗然也리라 書以復仲立하고 仍具此意하여 相與商求之
是歲乙酉初春 世懋 再識하노라


세설신어世說新語≫ 서문
내가 예장豫章에서 ≪세설신어≫를 간행하여 예전에 난삽하여 의미가 통하지 않아 병통으로 여겼던 구절도 이윽고 조리가 있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처럼 공들여 교감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찾아낸 글자나 소통시킨 구절이 왕왕 잘못되어 자칫 사람들을 미혹시킬 수 있었고, 품평하는 짤막한 구절도 계속 이어서 얻었으나 때때로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니 제대로 고찰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가형家兄 원미元美(왕세정王世貞)가 전에 ≪하씨어림何氏語林≫을 병합할 때 수록하기에 마땅하지 않은 일화를 제거하고 〈≪세설신어≫와〉 합하여 한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 책은〉 오래되어 결국 산실散失되었다.
친구인 이 이 책을 얻고는 좋아하여 차례로 를 달았고, 다시 하씨何氏(하량준何良俊)가 잘못한 것을 정정하는 한편 미비한 주석을 보충하느라 수 년 동안 작업하여 마침 내가 민중閩中에 가게 되자, 그가 손수 〈그 원고를〉 보여주고 또 작자의 뜻을 서문으로 써줄 것을 청하므로 예장에서 간행한 뒤 다시 교감해둔 선본善本을 아낌없이 그에게 주었다.
대개 임천臨川(유의경劉義慶)과 유효표劉孝標(유준劉峻)는 업적이 대략 같으며 원랑元郞(하량준何良俊)이 〈유의경을〉 보완해준 것은 그 뜻이 또한 근실하였으니, 예전에는 오히려 반쪽으로 갈라졌던 이 오늘에야 비로소 온전한 옥으로 합쳐진 것이다. 내가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은 장차 해결되지 않겠는가.
유효표의 주는 중간에 섞여들어 간 것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어 약간 지적을 받으나, 끝내 이 사람을 저승에서 살아오게 하여 천 년 뒤인 오늘날에 밝히게 할 수는 없으리라. 서문을 지어 장중립에게 돌려주고 이어 이러한 뜻을 갖추어 써서 서로 함께 상의하고자 한다.
을유년乙酉年(1585) 1월에 왕세무王世懋가 다시 쓰다.


역주
역주1 世說新語序 : 저본에는 이 제목이 없고 단지 王世懋의 서문 아래에 이어서 기술하였으나 여기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제목을 붙였다.
역주2 子固(曾鞏) : 曾鞏(1019~1083)은 北宋의 政治家이며 散文家이다. 南宋 理宗 때 ‘文定’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建昌 南豐(지금의 江西) 사람이므로, ‘南豐先生’이라고 불렸다. 嘉祐 2년(1057) 進士이다. ‘唐宋八大家’ 중의 한 명이며 ‘南豐七曾’(曾鞏․曾肇․曾布․曾纡․曾纮․曾協․曾敦)의 한 사람이다. 藏書가 2만 권에 달했는데 직접 교감하는 일을 늙었을 때까지 쉬지 않았다고 한다. 저술에 ≪元豐類稿≫․≪隆平集≫이 있다.(≪宋史≫ 〈曾鞏傳〉)
역주3 張仲立 : 이 책을 校註한 張文柱를 말한다. ≪歷朝小傳≫에, 字가 ‘中立’이며 崑山 사람으로 萬曆 戊子年(1588)에 鄕薦에 의해 靑州守로 부임하였다가 4년 뒤에 죽었다고 하였다.(≪世說音釋≫)
역주4 校註한……가득하였다 : 원문의 ‘殺靑’은 ‘대나무 껍질의 푸른색을 죽인다.’는 의미인데, 나중에 죽간에 좀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먼저 죽간을 불에 살짝 구워 대나무에서 땀이 나듯 나오는 물기를 없앤 뒤 껍질을 벗기는 공정을 거친 죽간을 말한다. 이런 죽간이 방에 가득하였다는 것은 張文柱가 ≪世說新語補≫를 교감하고 주석을 내느라 많은 공력을 들였음을 묘사한 것이다.(≪世說音釋≫)
역주5 鄭玄이……것처럼 : 鄭玄(127∼200)은 후한 말 경학의 대가이다. 자는 康成이다. 모든 經에 정통하여 漢代 經學을 통일적으로 집대성하였다. ≪毛詩≫․≪周禮≫․≪儀禮≫․≪禮記≫ 등의 주를 내었는데, ≪春秋左氏傳≫은 특별히 服虔에게 전수하였다. 복건은 후한의 학자로, 자는 子愼이며, 河南 滎陽 사람이다. 九江太守를 지냈으며, 명저인 ≪春秋左氏傳解≫를 남겼다. 여기서는 미진한 부분에 대한 연구가 후학을 만나 완성될 것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6 鉛槧 : 옛날에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도구로, ‘鉛’은 푸른색 주석으로 만든 鉛粉이고 ‘槧’은 나무를 잘라 만든 書板이다. ≪西京雜記≫에 “揚子雲(揚雄)이 항상 鉛粉을 품고 木板을 들고 다녔다.[揚子雲 好事常懐鉛提槧]”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으며, 훗날에는 종이와 붓, 문필에 종사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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