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公이 將伐蜀할새 在事諸賢이 咸以李勢在蜀旣久하고 承藉累葉하며 且形據上流三峽하여 未易可克이어늘 唯劉尹云
伊必能克蜀
하리라 觀其蒱博
하니 不必得
이면 則不爲
注+① 華陽國志曰 “李勢, 字子仁, 陽臨渭人. 本巴西宕渠賨人也. 其先李特, 因晉亂據蜀, 特子雄稱號成都. 勢祖驤, 特弟也. 驤生壽, 壽簒位自立, 勢即壽子也. 晉安西將軍伐蜀, 勢歸降, 遷之州. 自起至亡, 六世三十七年.” 溫別傳曰 “初, 朝廷以蜀處險遠而溫衆寡少, 軍深入, 甚以憂懼, 而溫直指成都, 李勢.” 語林曰 “劉尹見桓公, 每嬉戱必取勝, 謂曰 ‘卿乃爾好利, 何不?’ 及伐蜀, 故有此言.”라하다
14-26 환공桓公(환온桓溫)이 장차 촉蜀을 정벌하려 할 때, 일을 맡고 있던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이세李勢가 촉蜀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계승한 지 여러 세대가 되었으며 또 지형이 상류의 삼협三峽에 근거하고 있어 정벌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유윤劉尹(유담劉惔)만은 말하였다.
“그(환온)는 반드시 촉을 정벌할 것이다. 그가 도박하는 것을 관찰해보니 그는 반드시 딸 수 없으면 하지 않았다.”
注+① 에 말하였다. “이세李勢는 자字가 자인子仁이고, 약양略陽 임위臨渭 사람이다. 본래 파서巴西 탕거종인宕渠賨人이었는데, 그의 선조인 이특李特이 진晉나라의 난리를 틈타 촉蜀에 웅거하였고 이특의 아들 이웅李雄이 성도成都에서 황제를 칭하였다. 이세의 조부 이양李驤은 이특의 아우이다. 이양이 이수李壽를 낳고 이수가 제위帝位를 찬탈하여 스스로 자립하였는데, 이세는 바로 이수의 아들이다. 진晉나라의 안서장군安西將軍(환온桓溫)이 촉을 치자 이세가 항복하여 양주揚州로 옮겨졌으니, 창건에서 멸망까지가 6대 이었다.”
〈환온별전桓溫別傳〉에 말하였다. “처음에 조정에서는 촉이 험준하고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 환온의 군사는 수가 적은데다가 고립된 군대가 깊이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환온이 곧바로 성도成都로 쳐들어가자 이세가 항복하였다.”
에 말하였다. “유윤劉尹(유담劉惔)은 환공이 매번 도박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을 보고는 말하기를, ‘경이 이렇게 이기기를 좋아하니 어찌 위급한 일을 해결하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촉蜀을 치러 갈 때였으므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