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稱 書不盡言하고 言不盡意라하니 然則書者는 言之餘響이요 而言者는 意之景測也라 是以로 莫逆之旨는 恒存乎相視하고 糟粕之喩는 無與於心傳이니 由百世之下로 讀其書하여 而欲想見其爲心이 不亦遠乎아 此立言者之所以難也라
晉人이 雅尙淸談하여 風流映於後世한대 而臨川王이 生長晉末하여 沐浴浸溉하여 述爲此書하니 至今諷習之者가 猶能令人舞蹈하여 若親覩其獻酬라
儻在當時
하여 聆樂衛之韶音
하고 承殷劉之潤響
하면 가 貫心入脾
리니 尙書
가 爲之含笑
하고 平子
가 由斯絶倒
가 不亦宜乎
아 盖晉人之談
은 所謂言之近意
요 而臨川此書
는 抑亦書之近言者也
라
余幼而酷嗜此書하고 中年彌甚하여 恒著巾箱하고 鉛槧數易하며 韋編欲絶이라 第其句或勾棘하고 語近方言하니 句深則難斷하고 語異則難通이라 積思累校하여 小獲疏明이나 終乎闕疑하여 以遵聖訓이라
至於孝標一注博引旁綜하여는 前無古人하니 裴松之三國志註가 差得比肩이로대 而頗爲俗夫攙入叔世之談하니 恨不能盡別淄澠하여 時一標出하여 以洗卯金氏之冤이라
初雖閟之帳中이나 旣欲公之炙嗜한대 參知喬公이 見之하고 亟相賞譽하여 卽授梓人이라 爰綴末章에 敍所繇梓하니 是編也成에 吾豈敢謂二氏之忠臣이리오 抑庶幾不爲風雅之罪人乎인저
≪
주역周易≫에
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글이란 말의
여운餘韻이요 말이란 뜻을 헤아리는 그림자이다. 이리하여
은 마음을 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백 세대 이후에 그 사람의 책을 읽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것은 너무 우활하지 않은가. 이것이 책을 저술하는 것[
입언立言]이 어려운 이유이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평소
청담淸談을 숭상하여 풍류가 후세에 전해졌는데,
이
진대晉代 말末에 나고 자라 그러한 풍류에 젖어 이 책을 저술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그것을 외고 익히는 것이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춤추게 하여 마치 술잔을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과 같게 한다.
만일 당시에 살아
과
의 낭랑한 소리를 듣고
와
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다면, 그들의 절묘한 담론이 심장을 관통하고 비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니,
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대개
진晉나라 사람의 청담은 말이 뜻에 가까운 경우이고,
임천臨川(
유의경劉義慶)의 이 책은 또한 글이 말에 가까운 경우라 이를 만하다.
내가 어려서부터 이 책에 매우 탐닉하였고 중년에는 더욱 심하여 항상 책상자 속에 넣어두고 〈필사하느라〉 분필과
서판書板을 자주 갈았으며 〈책을 묶은〉 가죽 끈이 거의 끊어지려 하였다. 다만 구절이 더러 난삽하고 언어가
방언方言에 가까우니, 구절이 심오하면 판단하기 어렵고 말이 다르면 알아듣기 어려운 법이라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교정하여 약간 소통되게 하였으나,
왕세무王世懋
널리 인용하고 사방으로 종합한
의
주註는 이전에 〈이 정도로 주석을 낸〉
고인古人이 없었으니
의 ≪
삼국지三國志≫
주註가 약간 이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부俗夫들이 말세의 담론을 그 속에 상당히 집어넣었는데, 그것을 다 분별하고 그때마다 일일이 드러내어
의 원한을 풀어줄 수 없었던 것이 한스럽다.
처음에는 이 책을 장막 속에 감춰두었으나 이윽고
공공公共의 즐길 거리로 삼고자 하였는데
이 보고는 매우 칭찬하고 즉시
에게 주어 간행하게 하였다. 이제 마지막 장을 끝내고 간행하게 된 까닭을 서술하니, 이 책을 완성함에 내 어찌 감히
의
충신忠臣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풍아風雅의 죄인이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만력萬曆 경진년庚辰年(1580) 가을에
오군吳郡의
가 찬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