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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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湘東王繹注+① 梁書曰 “元帝, 諱繹, 武帝第七子也. 初封湘東王, 簡文被弑, 乃卽位於江陵.” 入援臺城 頓軍武城하고 淹留不進注+② 按司馬光通鑑, 梁大寶元年, 湘東王繹移檄討侯景, 遣王僧辯次巴陵. 繹有他志, 僧辯一再有功, 復令且頓尋陽, 以待兵集, 及綱弑棟廢, 始遣東下.이어늘 中記室參軍蕭賁 以繹不早下 心甚非之
嘗與繹雙陸 食子未即下하니 斂手言曰
殿下都無下意注+③ 南史曰 “蕭賁, 字文奐. 形不滿六尺, 有文才, 能書善畫. 起家爲湘東王法曹參軍.”
梁書侯景傳曰 “賁, 骨鯁士也. 每恨湘東不入援, 嘗與王雙陸, 食子未下, 賁曰 ‘殿下都無下意.’ 王深爲憾, 遂因事害之.”
라하다


20-18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注+① ≪양서梁書≫에 말했다. “원제元帝으로 무제武帝(소연蕭衍)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처음에는 상동왕湘東王에 봉해졌는데, 간문제簡文帝(소강蕭綱)가 시해되자 강릉江陵에서 즉위하였다.” 을 지원하러 들어갔으나 무성武城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오래 머물면서 나아가지 않았다.注+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살펴보건대, 나라 대보大寶 원년(550)에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이 격문을 띄워 후경侯景을 성토하고, 왕승변王僧辯을 보내 파릉巴陵에 머무르게 하였다. 소역은 다른 뜻이 있었기에 왕승변이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자 다시 심양尋陽에 주둔하면서 군대가 모이기를 기다리도록 하였다. 〈간문제簡文帝소강蕭綱이 시해당하고 〈예장왕豫章王소동蕭棟이 폐위되자 비로소 동쪽으로 내려보냈다. 중기실참군中記室參軍 소분蕭賁은 소역이 빨리 내려가지 않는 것을 마음 속으로 몹시 옳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한번은 소역과 쌍륙雙陸을 두었다. 〈소역이〉 말이 먹었는데도 바로 〈그 말을 말판 밖으로〉 내려놓지 않자 소분이 〈말판에서〉 손을 거두어 들이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注+③ ≪남사南史≫에 말했다. “소분蕭賁문환文奐이다. 몸은 6척이 되지 않았으나, 문재文才가 있었고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다. 상동왕湘東王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양서梁書≫ 〈후경전侯景傳〉에 말했다. “소분蕭賁은 강직한 선비였다. 매번 상동왕湘東王이 도우려고 들어가지 않는 것을 불만스러워 하였다. 한번은 상동왕과 쌍륙雙陸을 놀다가 〈상동왕이〉 말을 먹고도 내려놓지 않자, 소분이 ‘전하께서는 내려놓으실 뜻이 도무지 없으시군요.’라고 하였다. 상동왕이 몹시 괘씸하게 여기고 마침내 다른 일을 계기로 해치고 말았다.”


역주
역주1 臺城 : 東晉에서 南朝 때까지의 수도인 建康, 즉 지금의 南京에 있던 皇宮으로 建康宮이라고도 한다.
역주2 내려놓으실……없으시군요 : 여기서 ‘내려놓다’는 말은 중의적 표현으로 ‘내려가다’라는 뜻도 된다. 소분은 소역이 무성에서 주둔만 하고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가리켜 한 말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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