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하였다. 순욱은 사람됨이 훤칠하고 영민하며, 자신을 낮추어 선비를 대접하여 앉을 때 방석을 포개지 않았다. 그는 대각臺閣(상서대尙書臺)에 있을 때에도 사욕으로 마음을 흔들지 않았다. 50세에 세상을 떠나자 경후敬侯라는 시호를 받았고, 명성과 덕망이 높다는 이유로
의 ≪양양기襄陽記≫에 말하였다. “유계화劉季和는 성품이 향기를 좋아하여 항상 측간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향로 위를 지나왔다. 주부主簿인 장탄張坦이 ‘사람들이 공에 대해 속된 사람이라고 하던데 빈말이 아닙니다.’라고 하니, 유계화가 말하였다. ‘순령군荀令君(순욱荀彧)이 남의 집을 방문하면, 〈그가〉 앉았던 곳에서 3일 동안 향기가 풍긴다네. 나를 순영군과 비교하여 어떻다고 생각하길래 내가 향기를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가?’ 장탄이 말하였다. ‘옛날에
역주6習鑿齒 :
317~384. 魏晉시대 晉 襄陽 사람으로, 字는 彦威이다. 桓温의 從事․西曹主簿가 되었는데, 환온의 簒位 계획에 반대하여 户曹參軍으로 좌천되었고, 이후에 滎陽太守를 역임하였다. 그는 玄學․佛學․史學에 정통하였고, 저서로 ≪漢晉春秋≫․≪襄陽耆舊記(襄陽記)≫․≪逸人高士傳≫․≪習鑿齒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