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劉季和 嘗言하되
荀令君注+① 典略曰 “荀彧, 字文若, 潁川人, 爲漢侍中․守尙書令. 彧爲人美偉, 折節待士, 坐不累席. 其在臺閣間, 不以私欲撓意. 年五十薨, 諡曰敬侯, 以其名德高, 追贈太尉.” 至人家 坐處 常三日香注+② 襄陽記曰 “劉季和, 性愛香, 嘗上厠還, 過香罏上, 主簿張坦曰 ‘人名公作俗人, 不虛也.’ 季和曰 ‘荀令君至人家, 坐處三日香, 爲我如何令君, 而惡我愛也?’ 坦曰 ‘古有好婦人, 患而捧心嚬眉, 見者皆以爲好. 其鄰醜婦法之, 見者走. 公便欲使下官遁走邪?’ 季和大笑, 以是知坦.”이라하다


24-4 【가 일찍이 말하였다.
(순욱荀彧)이注+어환魚豢에 말하였다. “순욱荀彧문약文若으로 영천潁川 사람이며, 나라의 시중侍中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하였다. 순욱은 사람됨이 훤칠하고 영민하며, 자신을 낮추어 선비를 대접하여 앉을 때 방석을 포개지 않았다. 그는 대각臺閣(상서대尙書臺)에 있을 때에도 사욕으로 마음을 흔들지 않았다. 50세에 세상을 떠나자 경후敬侯라는 시호를 받았고, 명성과 덕망이 높다는 이유로 남의 집을 방문하면, 〈그가〉 앉았던 곳에서 언제나 항상 3일 동안 향기가 풍긴다.”注+의 ≪양양기襄陽記≫에 말하였다. “유계화劉季和는 성품이 향기를 좋아하여 항상 측간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향로 위를 지나왔다. 주부主簿장탄張坦이 ‘사람들이 공에 대해 속된 사람이라고 하던데 빈말이 아닙니다.’라고 하니, 유계화가 말하였다. ‘순령군荀令君(순욱荀彧)이 남의 집을 방문하면, 〈그가〉 앉았던 곳에서 3일 동안 향기가 풍긴다네. 나를 순영군과 비교하여 어떻다고 생각하길래 내가 향기를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가?’ 장탄이 말하였다. ‘옛날에 공께서는 하관下官으로 하여금 달아나게 하고자 하십니까?’ 유계화가 크게 웃고는 이 일로써 장탄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역주
역주1 劉季和 : ≪水經≫의 箋에서 인용한 〈襄陽耆舊傳〉에 “유홍은 자가 계화로, 패국 상현 사람이다.[劉洪 字季和 沛國相人]”라고 하였다.(≪世說音釋≫)
역주2 令君 : 魏晉시대에 尚書令을 높여 불렀던 호칭으로, 荀彧이 상서령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호칭한 것이고, 이후에는 지위가 높은 大臣을 지칭하였다.
역주3 ≪典略≫ : 三國 魏의 郞中이었던 魚豢이 편찬한 책으로, 周나라․秦나라로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룬 野史인데 현재는 散失되었으며, 淸나라 학자 納蘭性德이 집록한 輯本이 남아 있다.
역주4 : 품계와 관직을 서로 견주어 관직의 앞에 붙이는 규례 가운데 하나이다. 품계가 높고 관직이 낮은 경우에는 관직 앞에 行을 붙이고, 품계가 낮고 관직이 높은 경우에는 관직 앞에 守를 붙인다.
역주5 太尉에 추증되었다 : 三國 魏 元帝(曹奂) 咸熙 2년(265)에 추증되었다.
역주6 習鑿齒 : 317~384. 魏晉시대 晉 襄陽 사람으로, 字는 彦威이다. 桓温의 從事․西曹主簿가 되었는데, 환온의 簒位 계획에 반대하여 户曹參軍으로 좌천되었고, 이후에 滎陽太守를 역임하였다. 그는 玄學․佛學․史學에 정통하였고, 저서로 ≪漢晉春秋≫․≪襄陽耆舊記(襄陽記)≫․≪逸人高士傳≫․≪習鑿齒集≫ 등이 있다.
역주7 어떤……도망쳤습니다 : ≪莊子≫ 〈天運〉에 보이는 내용이다.
역주8 (我)[香] : 저본에는 ‘我’로 되어 있으나, ≪何氏語林≫에 의거하여 ‘香’으로 바로 잡았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