殷中軍
이 爲庾公長史
注+① 按庾亮僚屬名及中興書, 浩爲亮司馬, 非爲長史也.하여 下都
한대 王丞相
이 爲之集
하니 桓公
과 王長史
와 王藍田
注+② 王述別傳曰 “述, 字懷祖, 太原晉陽人. 祖湛․父承, 竝有高名. 述蚤孤, 事親孝謹, 簞瓢陋巷, 宴安永日, 由是爲有識所知. 襲爵藍田侯.”과 謝鎭西
가 竝在
라 丞相
이 自起解帳
하고 帶麈尾
하여 語殷曰
旣共淸言에 遂達三更하니 丞相與殷이 共相往反할새 其餘諸賢은 略無所關이라 旣彼我相盡에 丞相乃歎曰
向來語는 乃竟未知理源所歸나 至於辭喩不相負하니 正始之音이 正當爾耳라하다
昨夜
에 聽殷王淸言
한대 甚佳
하여 仁祖亦不寂寞
하고 我亦時復造心
이어늘 顧看兩王掾
注+③ 王濛․王述, 竝爲王導所辟.하니 輒翣如生母狗馨
이라하다
注
劉云 “豈有所不可故爾. 形容不服善之態, 當有此.”
8-31
은중군殷中軍(
은호殷浩)이
유공庾公(
유량庾亮)의
장사長史가 되어
注+① ≪유량료속명庾亮僚屬名≫과 하법성何法盛의 ≪중흥서中興書≫를 살펴보건대, 은호殷浩는 유량의 사마司馬가 되었고, 그의 장사長史가 된 적은 없었다. 왕승상王丞相(
왕도王導)이 그를 위해 모임을 여니,
환공桓公(
환온桓溫)․
왕장사王長史(
왕몽王濛)․
왕람전王藍田(
왕술王述)․
注+② 〈왕술별전王述別傳〉에 말하였다. “왕술은 자字가 회조懷祖로, 태원太原의 진양晉陽 사람이다. 조부 왕담王湛과 부친 왕승王承은 모두 훌륭한 명성을 지녔다. 왕술은 어릴 때 부친을 여의었으나 모친을 효성스럽고 정성스럽게 섬기며, 빈민촌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니, 이 때문에 식자층에게 이름이 알려졌다. 남전후藍田侯의 작위를 세습하였다.”사진서謝鎭西(
사상謝尙)가 모두 참석하였다. 왕승상이 스스로 일어나 휘장을 젖히고
주미麈尾를 허리에 찬 채 은중군에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자네와 함께 담론하여 명리名理(명칭과 이치)를 분석해야겠네.”
함께 청담淸談을 나누다가 마침내 삼경三更(밤 11∼1시)에 이르렀는데, 왕승상과 은중군이 함께 서로 논리를 주고받는 동안 나머지 여러 명현名賢들은 조금도 관여하지 못하였다. 피차 자신의 주장을 모두 펼친 뒤에 왕승상이 탄복하면서 말하였다.
“조금 전의 담론은 결국
모르겠으나, 표현과 비유가 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으니
이 바로 이와 같았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환선무桓宣武(환온)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어젯밤에 은중군과 왕승상의 청담을 들었는데 매우 훌륭하여
사인조謝仁祖(사상)도 말이 없지 않았고 나의 경우도 그 담론이 자주 마음에 파고들었소. 그런데 두 왕씨(
왕몽王濛․
왕술王述)
연掾(속관)을 돌아보니,
注+③ 왕몽王濛과 왕술王述은 모두 왕도王導에게 발탁되었다. ”
注
◦ 유진옹劉辰翁:≪세설신어世說新語≫에 보이는 ‘신身’이라는 글자는 간혹 짜증나게 한다.
注
◦ 유신옹劉辰翁:아마 옳지 않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훌륭함에 복종하지 않는 작태를 형용할 때는 당연히 이와 같은 표현이 있다.
注
◦ 왕세무王世懋:이 말은 지나치게 거칠다. 게다가 사인조謝仁祖(사상謝尙)가 어찌 환온桓溫 아래에 거론되는 것을 좋아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