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宗
이 嘗賜酺三日
注+① 漢書注曰 “漢律三人以上, 無故飮酒, 罰金四两, 故以賜酺爲惠澤.” 唐無酺禁, 賜酺者, 聚作伎樂, 高年賜酒麪也.에 上御五鳳樓
하니 觀者喧溢
하여 樂不得奏
하고 金吾白挺如雨
로되 不能遏止
라 上患之
하니 高力士
注+② 唐書曰 “高力士, 馮盎曾孫也. 冒姓高氏. 武后勅給事左右. 玄宗時歴進開府儀同三司, 後除籍, 流巫州卒.”가 奏
하되
河南丞嚴安之가 爲理嚴하여 爲人所畏하니 請使止之하소서하니
上從之하다 安之가 至하여 以手板으로 繞塲畫地하고 曰
於是
에 三日指其畫
하여 以相戒
하여 無敢犯者
注+③ 雲溪友議曰 “嚴安之定之昆弟也. 安之爲長安戎曹, 權過京尹.” 封氏聞見錄曰 “嚴安之爲赤縣尉, 力行猛政.”하다
6-28【
보補】
당唐 현종玄宗이 한번은 3일 동안
을 내려주었다.
注+①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 안사고顔師古 주注에 말하기를 “한漢나라 법률法律에서는 3인 이상이 아무 이유 없이 〈모여〉 술을 마시면 벌금이 4냥이었다. 그러므로 포연酺宴을 하사하는 것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하였다. 당唐나라에는 포금酺禁이 없었는데도 포연酺宴을 내려준 것이니, 백성을 모이게 하여 음악을 연주하고 노인에게 술과 국수를 하사한 것이다. 임금이
오봉루五鳳樓에 나아가니 구경꾼이 가득하여 음악을 연주할 수 없을 정도였고,
가 휘두르는 몽둥이가 빗발쳤으나 도저히 제지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이러한 상황을 염려하자
고역사高力士가 상주하였다.
注+② ≪신당서新唐書≫ 〈환자전宦者傳〉에 말하였다. “고역사高力士는 풍앙馮盎의 증손인데,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급사좌우給事左右로 삼았다. 현종玄宗 때 진개부의동삼사進開府儀同三司를 지냈는데 후에 명적名籍에서 제거되고 무주巫州로 유배 가서 죽었다.”
“
하남승河南丞 엄안지嚴安之가 엄하게 다스려서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니 그에게 제지하게 하소서.”
당唐 현종玄宗
임금이 그 말을 따랐다. 엄안지가 도착하여
으로 마당을 빙 둘러 금을 긋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3일 동안 그 금을 가리키며 서로들 경계하여 감히 침범하는 자가 없었다.
注+③ 에 “엄안지嚴安之와 엄정지嚴定之는 형제이다. 엄안지는 장안융조長安戎曹로 있을 때 임시로 경윤京尹을 맡았다.” 하였다.
에 “엄안지嚴安之가 가 되어 정사를 엄하게 처리하는 데 힘썼다.”
注
◦ 이지李贄:이러한 즐거움에 임했으니 어찌 음악을 연주할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