馮當世
가 知并州
注+① 東都事略曰 “馮京, 字當世, 鄂州江夏人. 幼雋邁不群. 擧進士, 自鄕選至廷對, 俱第一. 宰相富弼, 京之婦翁也. 京知制誥日, 韓琦爲相, 京數月不一見. 琦謂其傲, 以語. 弼使往見之, 京曰 ‘公爲宰相, 而京不妄詣公者, 乃所以重公也. 豈傲哉.’ 官參知政事, 謚文簡.”에 以書
로 寄王平甫曰
并門은 歌舞妙麗하니 閉目不窺하고 日以談禪為上이라하니
若如所論
이면 未逹禪理
니 閉目不窺
가 已是一種公案
注+② 王介甫撰王平甫志曰 “安國, 字平甫, 臨川人. 熙寧間, 歷官大理寺丞.”이라하다
5-22【
보補】
풍당세馮當世(
풍경馮京)가
병주지사并州知事로 있을 때에
注+① ≪동도사략東都事略≫에 말하였다. “풍경馮京은 자字가 당세當世로 악주鄂州 강하江夏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특별하게 뛰어났다.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는데, 향시鄕試부터 정시廷試까지 모두 일등을 하였다. 재상宰相 부필富弼이 풍경의 장인이다. 풍경이 지제고知制誥일 때에 한기韓琦가 재상이었는데, 풍경은 몇 달간 한 번도 찾아가서 만나지 않았다. 한기가 그를 거만하다고 여기고 부필에게 이야기하였다. 부필이 가서 보게 하자, 풍경이 〈가서 한기에게〉 ‘공께서 재상이신데 제가 함부로 공을 찾아뵙지 않은 것은 공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어찌 거만해서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편지를
왕평보王平甫(
왕안국王安國)에 부쳐 말하였다.
“병문幷門(병주幷州)은 가무歌舞가 아름다워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면서 날마다 선禪에 대해 담론하는 것을 상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말씀하신 바와 같다면 아직 선의 이치에 통달하지 못하였습니다.
입니다.”
注+② 왕개보王介甫(왕안석王安石)가 지은 〈왕평보묘지王平甫墓誌〉에 “왕안국王安國은 자字가 평보平甫로 임천臨川 사람이다. 희령熙寧 연간(1068~1077)에 대리시승大理寺丞을 지냈다.”
注
◦ 이지李贄:왕안국王安國은 그래도 가학家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