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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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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荀中郎 在京口注+① 晉陽秋曰 “荀羨, 字則, (頴)[潁]川人, 光祿大夫崧之子也. 淸和有識裁. 少以主壻爲駙馬都尉. 是時, 殷浩參謀百揆, 引羨爲援, 頻莅義興․吳郡, 超授北中郞將․徐州刺史, 以蕃屛焉.” 中興書曰 “羨年二十八, 出爲徐․兗二州. 方伯之少, 未有若羨者也.” 登北固하여 望海云注+② 南徐州記曰 “城西北有別嶺入江. 三面臨水, 高數十丈, 號曰北固.”
雖未覩三山이나 便自使人有凌雲意하니 若秦․漢之君이면 必當褰裳濡足注+③ 史記封禪書曰 “蓬萊․方丈․瀛洲此三山, 世傳在海中, 去人不遠. 嘗有至者, 言諸仙人不死藥在焉, 黃金白銀爲宮闕, 草物禽獸盡白, 望之如雲, 及至, 反居水下, 欲到, 即風引舡而去, 終莫能至. 秦始皇登會稽, 並海上, 冀遇三神山之奇藥. 漢武帝旣封泰山, 無風雨變至, 方士更言蓬萊諸藥可得, 於是上欣然東至海, 冀獲蓬萊者.”하리라하다
【頭註】
‘令’一作‘全’.


4-50 순중랑荀中郎(순선荀羨)이 경구京口에 있을 때注+①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순선荀羨영칙令則이고 영천潁川 사람으로 광록대부光祿大夫 순숭荀崧의 아들이다. 맑고 온화하였으며 식견이 있었다. 젊어서 공주(심양공주尋陽公主)의 남편으로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다. 이때 은호殷浩가 모든 정사에 관여했는데, 순선을 끌어들여 뒷배로 삼고는 빈번히 의흥義興오군吳郡의 태수가 되게 하고 단계를 뛰어넘어 북중랑장北中郞將서주자사徐州刺史에 발탁하여 〈황실을〉 호위하도록 하였다.”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순선荀羨은 28세에 밖으로 나아가 서주徐州연주兗州 두 곳의 자사가 되었다. 동진東晉방백方伯 가운데 순선처럼 젊은 사람은 없었다.”
북고산北固山에 올라 바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注+② ≪남서주기南徐州記≫에 말하였다. “의 서북쪽에 별령別嶺이라고 있는데 장강長江 쪽으로 돌출해 있다. 삼면이 강에 접해 있고 높이가 수십 으로 ‘북고北固’라고 부른다.”
“비록 삼산三山은 보이지 않지만 절로 사람으로 하여금 구름을 헤치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고〉 싶은 생각을 갖도록 한다. 만약 나라와 나라의 군주였다면 틀림없이 하의를 걷어 올리고 발을 더럽혀가며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注+③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말하였다.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 이 세 곳의 산은 세상에 전하기로 바다 가운데에 있고 인간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일찍이 그곳에 가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신선들과 불사약이 있고 황금과 백은白銀으로 궁궐을 지었으며 식물과 동물은 모두 흰색이고 바라보면 마치 구름 같으며, 다가가면 도리어 물 아래에 있고 그곳에 가려고 하면 즉시 바람이 배를 당겨 그곳과 떨어지게 하여 끝내 도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시황始皇회계산會稽山에 오르고 바닷가에 가서 삼신산三神山의 기이한 을 구하길 바랐다. 무제武帝태산泰山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냈지만 풍우風雨이변異變도 없었고 방사方士들이 봉래산蓬萊山의 약을 얻을 수 있다고 다시 이야기하자, 이에 무제는 기뻐하며 동쪽으로 바다로 가서는 봉래산을 찾기를 바랐다.”
두주頭註
◦ 〈영칙令則의〉 ‘’자가 어떤 판본에는 ‘’자로 되어 있다.


역주
역주1 : 판본에 따라 ‘今’ 또는 ‘全’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역주2 中興 : 쇠퇴한 나라를 다시 회복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西晉이 망한 후 중흥한 東晉을 가리킨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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