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文舉年十歲
에 隨父到洛
이라 時李元禮有盛名
하고 爲司隸校尉
러니 詣門者皆儁才清稱及
親戚
이라야 乃通
이라 文舉
가 至門謂吏曰
昔先君仲尼與君先人伯陽으로 有師資之親하니 是僕與君으로 奕世爲通好也니이다
元禮及賓客이 莫不奇之라 太中太夫陳韙後至한대 人以其語語之하니 韙曰
韙太踧踖
注+① 融别傳曰 “融四歲, 與兄食梨, 輒引小者. 人問其故, 答曰‘小兒法當取小者.’ 年十歲, 隨父詣京師, 河南尹李膺有重名. 融欲觀其爲人, 遂造之, 膺問‘父祖, 嘗與僕周旋乎?’ 融曰‘然. 先君孔子與君先人李老君, 同德比義, 而相師友, 則融與君, 累世通家也.’ 衆坐莫不歎息, 僉曰‘異童子也.’ 太中大夫陳韙後至, 同坐以告, 韙曰‘人小時了了者, 長大未必能奇.’ 融應聲曰‘即如所言, 君之幼時, 豈實慧乎?’ 膺大笑, 顧謂融曰‘長大必爲偉器.’”이라
22-5 공문거孔文舉(공융孔融)가 열 살 때 부친을 따라 낙양洛陽에 갔다. 당시 이원례李元禮(이응李膺)는 성대한 명성이 있었고 사례교위司隸校尉였기 때문에 그 집에 찾아온 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나 깨끗한 명성을 지닌 사람들이거나 내외 친척이라야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공문거가 문에 이르러 아전에게 말하였다.
문을 통과하고서 〈이원례〉 앞에 앉았다. 이원례가 물었다.
“옛날에 나의 선조인
중니仲尼(공자)께서
에게
이 있으니, 저는 어르신과 수 세대에 걸친 친분이 있는 셈입니다.”
이원례와 빈객들이 모두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태중태부太中太夫 진위陳韙가 뒤늦게 도착하였는데 다른 사람이 그에게 〈공문거가〉 한 말을 이야기해주자, 진위가 말하였다.
“어렸을 때 똑똑하다고 커서 다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지.”
“당신은 어렸을 때 분명 똑똑하셨나 봅니다.”
진위가 몹시 어쩔줄 몰라 하였다.
注+① 〈공융열전孔融別傳〉에 말하였다. “공융孔融이 네 살 때 형과 함께 배를 먹는데, 번번이 작은 배를 집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작은 아이는 응당 작은 것을 먹는 법입니다.’라고 하였다. 열 살 때 부친을 따라 수도에 갔는데, 하남윤河南尹 이응李膺이 명망이 두터웠다. 공융이 그의 인물됨을 관찰하고 싶어 마침내 그를 찾아갔다. 이응이 ‘그대의 부친이나 조부가 나와 교유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공융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나의 선조인 공자께서 당신의 선조인 이로군李老君과 덕德과 의義가 비등하였으니, 공융과 당신은 수 세대에 걸쳐 통교通交한 집안입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어 모두 말하기를, ‘신기한 동자이다.’라고 하였다. 태중대부太中大夫 진위陳韙가 뒤늦게 도착하였는데, 같은 좌석에 있던 이가 〈공융이 한 말을〉 알려주자, 진위가 ‘어렸을 때 똑똑한 사람이 장성하여서 반드시 기인奇人이 되는 건 아니지.’라고 말하였다. 공융이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소리쳐 말하기를, ‘말씀하신 대로라면 당신은 어렸을 때 아마도 참 총명하셨겠죠?’라고 하였다. 이응이 크게 웃고 공융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