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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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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征遼東注+① 太宗紀曰 “貞觀十八年, 命英國公李勣等, 發天下甲士, 伐高麗. 明年五月, 車駕度遼, 親率鐵騎, 圍遼城, 高麗別將高延壽以其衆降. 因名所幸山爲駐蹕山, 刻石紀功.” 拜楊弘禮爲兵部侍郎注+② 唐書曰 “楊弘禮, 隋尙書令素弟岳之子. 高祖受禪, 襲爵淸河郡公. 太宗征遼, 以弘禮有文武材, 擢兵部侍郞, 專典兵機之務.”이라 駐蹕之役 領馬歩二十四軍하여 跳出賊背하니 所向摧靡 帝自山上望見 其袍仗精整하고 人人盡力이라 歎曰
越公兒郎 故有家風注+③ 隋書曰 “楊素兼文武之資, 志懷遠大, 以功名自許. 高祖龍飛, 功臣莫居其右, 封越國公.”이라하다


16-46 【】 〈나라〉 태종太宗요동遼東을 정벌하면서注+① ≪구당서舊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에 말했다. “정관貞觀 18년(644)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 등에게 명하여 천하天下의 군사들을 징발하여 고구려를 정벌하게 하였다. 다음해 5월 어가가 요하遼河를 건넜고 친히 철기鐵騎를 거느리고서 요동성遼東城을 포위하자 고구려의 별장 고연수高延壽가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행행行幸했던 산을 주필산駐蹕山이라고 이름하고 비석을 세워 전공을 기록하였다.” 양홍례楊弘禮병부시랑兵部侍郎에 제수하였다.注+② ≪신당서新唐書≫에 말했다. “양홍례楊弘禮나라 상서령尙書令 양소楊素의 동생인 양악楊岳의 아들이다. 고조高祖(이연李淵)가 〈수나라로부터 나라를〉 선양받은 뒤에 작위를 물려받아 청하군공淸河郡公에 봉해졌다. 태종太宗요동遼東을 정벌하면서 양홍례에게 문무文武의 자질이 있다고 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에 발탁하고 군기軍機의 업무를 전담시켰다.” 주필산駐蹕山의 전투에서 기병과 보병 24을 데리고 적의 후방으로 뛰어들자 향하는 곳마다 〈적들이〉 흩어져 달아났다. 황제가 산 위에서 군용軍容이 가지런하고 사람들마다 온힘을 다하는 것을 보고는 감탄하였다.
월국공越國公(양소楊素)의 아들은 참으로 가풍家風을 지니고 있구나.”注+③ ≪수서隋書≫에 말했다. “양소楊素문무文武의 자질을 겸비하고 원대한 뜻을 품었으며 업적과 명성을 자부하였다. 고조高祖(양견楊堅)가 즉위했을 때에 공신功臣 가운데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월국공越國公에 봉해졌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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